코미디 영화 흥행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극한직업’. 이 영화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건 마약반 형사 5인방(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이다. 하지만 1570만 관객의 뇌리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마약조직 보스 이무배 역을 맡은 배우 신하균이다.
외양부터 강렬하다. 각 잡힌 슈트 차림에 깔끔하게 빗어 올린 헤어스타일, 온몸 구석구석 새겨진 화려한 문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흡인력은 배가된다. 안정적인 연기 톤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대사를 정확하게 구사해내는 모습에서 20년 경력 배우의 내공이 느껴진다.
사실상 조연. 출연 분량이나 비중이 적다. 데뷔 초부터 줄곧 주연으로 활약해 온 그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전작 ‘바람 바람 바람’(2018)을 함께한 이병헌 감독과의 인연으로 성사된 것인데, 단순히 의리 때문은 아니었다. 이 감독은 “신하균 선배가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어 했고, 이전에 해보지 못한 캐릭터라며 흔쾌히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 작품을 오롯이 이끌어갈 만한 역량을 갖춘 주연급 배우들이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특별출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인 ‘사바하’에서는 유지태가 미스터리한 사내로 등장해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김동욱 고성희가 주연한 ‘어쩌다, 결혼’에는 정우성 이정재 염정아 등 제작사 아티스트컴퍼니의 소속 배우들이 카메오로 대거 출연한다.
지난해 ‘쌍천만’ 흥행을 달성한 ‘신과함께’ 시리즈의 이정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염라 역으로 우정출연한 그는 1, 2편을 아우르며 극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건 물론 홍보 일정까지 소화했다. 인터뷰 석상에서 만난 이정재는 “요즘 배우들은 주·조연 개념을 따지기보다 어떤 캐릭터인지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익숙한 얼굴과 새로운 얼굴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면서 “주연급 배우 캐스팅을 통해 배역에 임팩트를 주는 건 그만큼 중요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극의 흐름상 해당 역할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친숙한 배우의 신선한 얼굴을 마주하는 건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연기 내공이 있는 배우가 합류하면 아무래도 버리는 장면이 줄어들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져 관객 만족도가 커진다”면서 “부가적으로 배우의 인지도 덕에 마케팅이나 홍보 측면에도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주연급 배우는 항상 주연만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연이어도 확실한 캐릭터와 역할이 주어진다면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면서 “아쉬운 건 여성 캐릭터는 여전히 제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다변화가 이뤄지면 한국영화가 더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