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열정페이? 비겁할 수 없는 청춘이기에 [리뷰]

부당계약과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청춘의 민낯을 담은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민규(곽민규)와 시은(김시은)의 연애는 고달프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녹초가 된 채 만나 잠시 시간을 갖는 게 일상이다. 데이트라고는 분식집에서 국수 한 그릇씩 먹는 정도. 그래도 둘이 함께여서 다행인 건, 서로의 고단한 현실을 견뎌내는 버팀목이 돼줄 수 있어서다.

디제이(DJ)를 꿈꾸는 민규는 낮에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친한 형이 운영하는 음악 클럽에서 페이 없이 공연을 한다. 시은은 학교 선배가 원장으로 있는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데 추가근무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거의 매일 야근을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민규는 아르바이트비 7만원이 적게 들어왔다고 사장에게 항의했다 해고를 당하고, 출연 예정이었던 공연은 계약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욕만 먹고 잘린다. 시은은 새로 들어온 강사에게 밀려 입시반 강의를 내주고 만다.

영화 ‘내가 사는 세상’ 속 이들의 모습은 부당한 노동환경에 내던져진 이 시대 청춘들의 단상이다.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열정페이 따위를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당장 오늘을 버티는 게 문제인데 미래를 그리는 건 사치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건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다.

영화의 담담한 화법이 현실의 민낯을 한층 진솔하게 보여준다. ‘호명인생’(2008) ‘그림자도 없다’(2011) 등 전작에서 꾸준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최창환 감독의 신작. 그는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고 싶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최 감독은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다. 임금은 오르지만 일하는 환경과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본의 그늘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이 좀 더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12세가. 오는 7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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