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도 채택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평양에 돌아가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향후 결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제 개발을 위해 꺼내든 ‘핵개발 심장(영변) 포기 카드’에도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만 확인한 귀국길이다. 북한은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외교소식통은 3일 “김 위원장은 양 정상 간 톱다운식 담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베트남 하노이에 갔다”며 “정상회담에서 제재 해제의 문턱이 낮춰질 줄 알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이를 높이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을 깨는 승부수에 김 위원장은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일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남측 취재진과 만나 “(김 위원장이) 미국의 거래방식과 계산법에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있고,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이런 회담에 정말 의미를 둬야 하는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 고위 당국자가 남측 취재진에게 김 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김 위원장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김 위원장이 최 부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당장 협상판을 깨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차 정상회담 이후 북한 매체나 당국이 미국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정상끼리 이미 만난 상태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과 미사일을 지렛대로 협상력을 키워 왔고, 이를 중단하면서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핵·미사일의 추가실험은 없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육성으로 비핵화를 약속한 상황에서 이를 뒤집기도 쉽지 않다. 미국과의 협상이 한번 어그러졌다고 해서 핵·미사일 카드를 다시 꺼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북한 국내 상황도 녹록치 않다. 북한은 지난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2020년 완료 목표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달성하려면 올해는 제재 해제를 통해 구체적 성과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의 핵포기 선언에도 제재 국면이 풀리지 않아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회담 결렬 소식이 자세히 알려지면 체제의 정당성에도 상당한 데미지(상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정상회담이 합의문 채택 없이 종료된 것은 언급하지 않은 채 “(양 정상이) 새로운 상봉을 약속했다”며 긍정적인 면만 부각했다. 또 “김 위원장은 외교의 거장”이라며 마치 성과를 낸 듯이 묘사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현재로선 미국이 원하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수용하고 제재 해제를 받거나, 제재를 버티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시나리오 모두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경제 발전 압박을 받고 있는 김 위원장이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