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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이 품은 애잔한 전설과 몽환적 풍경

충남 공주시 웅진동 고마나루 솔숲이 이른 아침 안개에 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 쌍의 부부가 기이한 모습을 한 소나무 사이를 다정하게 산책하고 있다.
 
공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왕릉 수호 돌짐승 ‘진묘수’.
 
요즘 감성에 맞게 꾸며진 제민천 하숙마을.
 
‘공주어씨네집’의 참게매운탕.


충남 공주는 백제의 옛 도읍지 웅진(熊津)이었다. 우리말로는 고마나루다. 고마는 곰(熊)을 뜻하고 나루는 진(津)이다. 공주 땅을 적시며 흘러가는 물줄기가 백제 흥망의 자취와 함께한 금강(錦江)이다. 1500여년을 지켜온 공산성과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 무령왕릉도 금강에 접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포함된 공주에 ‘고마나루 명승길’이 있다. 고마나루에서 출발해 국립공주박물관, 송산리고분군을 거쳐 공산성을 둘러보면 공주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명승길의 시작인 고마나루는 금강변에 있다. 백제의 중요 관문으로 고구려, 중국, 일본 등과 문물을 교역하던 국제항구로 이용됐다. 고마나루에 닿으면 무성한 솔밭이 운치를 더한다. 솔밭은 곰과 나무꾼의 애잔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한 나무꾼이 여인으로 변신한 암곰에게 붙들려가 두 아이를 낳고 살았다. 어느 날 나무꾼은 암곰 몰래 도망쳤다. 암곰은 강가에서 애타게 나무꾼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두 아이와 함께 금강에 몸을 던졌다. 이후 금강에서 자주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사람들은 암곰의 원한이라 생각해 사당을 짓고 원혼을 달래줬다.

곰사당 옆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발바닥에 닿는 흙이 부드럽고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봄기운을 전한다.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 휘어진 나무 자태가 기이하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몽환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고마나루 바로 아래에 해체 방안이 제시된 공주보가 있다.

고마나루에서 가까운 곳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다. 송산리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금제관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백제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왕관을 꾸민 장식의 일종인 금제관식은 금판을 뚫어 무늬를 넣은 것으로 밑에 줄기가 달려 있다. 줄기 중간에 꽃무늬가 배치됐으며 줄기가 길게 늘어져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으로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백제의 미를 보여준다.

왕릉 수호를 위한 돌짐승 진묘수(鎭墓獸)와 지석(誌石), 동탁은잔 등도 눈여겨볼 귀중한 유물이다. 무령왕릉 왕비 무덤에서 출토된 동탁은잔 받침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많이 알려진 인면조신이 새겨져 있다. 무령왕릉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실도 빼놓을 수 없다.

무령왕과 백제 문화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선 송산리 고분군을 찾으면 된다. 1971년 6호분의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중 발견된 무령왕릉에선 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해 108종 4600점이다. 국보로 지정된 것도 12종 17점이다.

무덤에서 발굴된 지석엔 ‘사마왕(무령왕)이 서기 523년 5월에 사망, 525년 8월에 왕릉에 안치됐다. 왕비는 526년 12월에 사망, 529년 2월에 안치됐다’고 쓰여 있다. 삼국시대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왕릉이다. 하지만 무령왕릉은 훼손이 심각해 1997년 말 영구 폐쇄됐다. 무령왕릉 모형전시관에 실물과 똑같이 재현해 놓았다.

공주 한복판의 공산성은 백제시대 웅진성으로 불렸으며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다. 성 내부에는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누각 등이 가득하다.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성벽 둘레는 약 2㎞. 한 바퀴 둘러가게끔 길이 조성돼 있다.

공산성에서 1.5㎞ 떨어진 곳에 하숙마을이 있다. 이 일대에 10여개의 학교가 있어 1960~70년대 공주 인근 지역에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제민천을 중심으로 몰려 살면서 자연스럽게 하숙촌이 형성됐다. 최근 도심 살리기 사업을 통해 요즘 감성에 맞게 꾸며졌다. 옛날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벽화로 남고 옛 건물은 게스트하우스·카페·식당으로 변모했다.

정병희 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테마 10선 9권역인 금강백제권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공주는 수려했던 백제의 문화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라며 “여행의 즐거움에 역사공부를 겸할 수 있어 학생이 있는 가족의 테마여행지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 여행메모
참게매운탕·칼국수·국밥… 국물맛 ‘입 호강’
옛 정취 담은 한옥 뜨끈한 구들에서 하룻밤


수도권에서 고마(곰)나루를 찾아간다면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당진영덕고속도로를 이용한 뒤 공주나들목에서 빠진 뒤 우회전해 백제큰길을 따라간다. 백제큰다리를 건너 정지산터널을 지나면 곰나루교차로에 닿는다.

공주의 먹거리로 국밥과 칼국수, 참게매운탕이 인기다. 국내산 한우와 파를 넣어 푹 끓인 공주국밥은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 국물맛이 달콤하고 시원하다. 칼국수는 자연산 밀복과 가다랑어로 국물을 낸 해물칼국수가 인기다. 잘 우려낸 해물 육수에 살아 있는 활바지락, 굴, 홍합 등 각종 해산물을 넣어 끓인다. 산성시장 뒷문과 이어지는 맛골목에 칼국수를 내놓는 가게가 즐비하다.

참게매운탕은 알이 꽉 들어차 있는 참게를 급속냉동해 쓴다. 대게나 꽃게에 비해 살집은 많지 않지만 단단한 껍질을 깨물면서 속살을 발라먹는 재미가 있다. ‘공주어씨네집’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웅진동 공주한옥마을에서 묵으면 좋다. 옛 한옥의 정취를 고스란히 재현한 도심 속 공간이다. 뜨끈한 구들에서 하룻밤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공산성이 가깝다. 우금티공원, 석장리 박물관,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수촌리 고분군 등도 볼거리다.

공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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