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끝났다.”
1011일 동안 유럽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가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하자 데이비드 모예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렇게 평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 시즌 중 감독 교체가 겹쳤던 레알은 1년도 안 돼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챔피언스리그 정상마저 물 건너가 무관으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도 높아졌다.
레알은 6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아약스에 1대 4로 졌다. 1차전 원정에서 2대 1로 이겼던 레알은 1·2차전 합계 3대 5로 역전 당하며 9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맛봤다.
레알 입장에선 2번의 골대 불운이 겹치긴 했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경기’였다. 주장이자 수비의 핵 세르히오 라모스는 1차전 종료 직전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3회)으로 이날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조별리그에서 2개의 경고를 받았던 그는 유리한 홈경기에 나서지 않고 경고를 해소하는 것이 8강 이후를 위해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1차전 후 “의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며 ‘경고 세탁’을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
라모스의 부재는 부실한 수비로 이어졌다. 레알 수비진은 젊은 아약스 선수들의 스피드와 패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공격수를 놓치는 등 공간도 자주 허용했다. “(라모스 부재는) 전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손실일 것”이라고 했던 에릭 탄 하그 아약스 감독의 예측이 현실이 된 것이다. 산티아고 솔라리 레알 마드리드 감독도 “당연히 라모스를 그리워했다”며 그의 공백이 컸음을 인정했다. 1차전에 패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이 나쁘지 않았던 아약스를 상대로 방심한 것이 참패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날 16강 탈락이 아니었더라도 레알이 4년 연속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 호날두의 공백을 메울 만한 대체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호날두는 레알이 챔피언스리그 3년 연속 우승을 시작하는 2015-2016시즌 이후 챔피언스리그에서만 43골을 터뜨렸다. 카림 벤제마가 18골, 가레스 베일이 8골을 기록 중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특히 공격의 주요 축인 베일이 홈 팬들의 야유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큰 약점이다. 16강 2차전도 선발로 출전하지 못 하다가 루카스 바스케스가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 투입됐다. 교체 투입 이후엔 골대를 맞추며 득점에 실패했다. 루카 모드리치는 “호날두만큼은 아니어도 최소 15~20골, 아니면 10골이라도 넣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 했다”며 “올 시즌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득점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조기 탈락하면서 레알은 올 시즌 주요 타이틀을 모두 놓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2월 이벤트 성격이 짙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서 알 아인(UAE)을 꺾고 우승한 것이 타이틀의 전부다. 국왕컵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 밀려 탈락한 데 이어 리그에서도 승점 48점으로 선두 바르셀로나(60점)는 물론이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53점)에도 뒤져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