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면서 독특한 모양의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내놨다. 노을이 지는 바다가 그려진 종이컵에는 “등대는 기다린다. ‘만주(晩舟)’는 어서 돌아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늦게 오는 배’를 뜻하는 만주는 중국어로는 ‘완저우’로 발음된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캐나다에서 체포돼 가택연금 중인 멍완저우 부회장을 가리킨 말이다. 멍 부회장은 어머니의 성씨를 이어받았다.
멍 부회장의 체포와 보석, 연금을 둘러싼 모든 일은 미·중 무역전쟁에 기반한 양국의 자존심 싸움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의 체포는 미국 정부의 요청이었다. 체포 시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갖던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고 공언하기도 했었다.
세계 경제가 주목하는 사건이다 보니 여론전도 뜨거웠다. 멍 부회장은 체포 10일 뒤 보석으로 풀려난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위챗에 엉망이 된 발레리나의 발 사진을 올렸다. “고난이 없이는 위대함도 없다”는 문구와 함께였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가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쓰인다”는 취지로 공격을 이어갔지만, 런 회장은 BBC와 인터뷰를 하며 “서쪽의 불이 꺼져도 동쪽은 여전히 빛난다. 북쪽이 어두워져도 남쪽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세계를 대표할 수 없다는 ‘맞불’이었다.
멍 부회장은 여전히 캐나다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전뿐 아니라 소송전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멍 부회장과 화웨이 법인을 기소했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자사 제품 사용 금지가 위헌이라는 소송을 7일 미국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화웨이 보이콧’의 근거가 되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 889조가 미국의 헌법 정신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멍 부회장은 자택에서 나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법원에 다녀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은 캐나다와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멍 부회장을 미국에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 심리가 열린 법정에서 멍 부회장 측은 “사안의 ‘정치적 성격’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멍 부회장의 신병 문제를 결정짓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멍 부회장을 둘러싼 미·중의 싸움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한국 경제에도 파장을 미친다. 최근 들어 양국의 무역협상이 타결 국면이라는 기대감이 주식시장에서 감지됐지만, 여전히 한국은행 등 국내 경제기관들은 미·중 무역협상 결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기대 심리’일 뿐 단언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싸움은 길어질 전망이다. 미국이 우방들에게 ‘화웨이 보이콧’을 청했지만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은 화웨이를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망 사업에서 배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이미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는 방증이다.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전시회 ‘MWC 2019’를 참관한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10’이 여러 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도 “편애를 받은 주인공은 화웨이였다”고 평가했다. 행사 첫날 MWC 측이 자체 발간한 신문 1면에 실린 회사도 화웨이였다고 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