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준 기타 하나, 내 삶이 바뀌었습니다”

연예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방시혁.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만 유명한 작곡가였지만 현재 그는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제작자로 거듭났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시혁이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 남자가 서울대 졸업식에서 펼친 강연이 화제가 됐다. 남자는 자신을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으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그림은 없다. 알지 못하는 미래에 시간을 쓰지 않고, 지금 현재 납득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자의 강연이 관심을 모은 건 그가 거둔 전인미답의 성공 스토리 때문이다. 남자는 바로 연예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방시혁(47). 알려졌다시피 그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2010년 이전만 해도 방시혁은 유명 작곡가일 뿐이었지만 현재는 해외 유수의 매체가 주목하는 제작자로 거듭났다. 그는 어떻게 지금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방시혁의 아버지는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낸 방극윤(80)씨다. 아버지는 운동엔 소질이 없는 아들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염려돼 기타를 사줬는데, 이 선물이 방시혁의 삶을 바꿔놓았다. 학업을 등한시했던 건 아니다. 학창시절 내내 성적이 우수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과에 진학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학력고사에서 방시혁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슬아슬한” 점수를 받았다. 그는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미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이던 1994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출전해 동상을 차지했다.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낸 건 가수 박진영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방시혁은 96년 박진영 3집 수록곡 ‘이별탈출’을 썼고, 이듬해엔 박진영이 세운 JYP엔터테인먼트에 입성해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룹 god나 가수 비의 많은 히트곡이 그의 작품이었다. 2005년 빅히트를 설립한 뒤에도 JYP 소속 뮤지션에게 곡을 주거나 매니지먼트를 맡곤 했다. 백지영에게 준 ‘사랑 안해’ ‘총 맞은 것처럼’ 같은 곡들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MBC)에서 ‘독설가 심사위원’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크게 도약한 건 2013년 BTS를 내놓으면서부터였다. 방시혁은 지난해 6월 강연 프로그램 ‘명견만리’(KBS1)에 출연해 BTS 결성 스토리를 전해주었다. “(BTS 리더) RM의 랩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을 그냥 둘 수 없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BTS 멤버들을 정말 멋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BTS는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팀이 아니었다. 팀명을 두고 “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의 줄임말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팀은 서서히 인기를 끌어올리더니 2015년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이후엔 K팝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됐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방시혁은 위대한 코디네이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BTS가 지난 연말 참석한 시상식이 22개나 된다. 이들은 어떤 매체에서 주최하건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시상식에서는 저마다 다른 무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방시혁은 이렇듯 미디어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어떤 무대건 ‘개별성’을 띠게 만드는 기획력이 대단한 제작자”라고 설명했다.

방시혁은 현재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빌보드는 세계 음악시장을 움직이는 인물에게 수여하는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73명) 리스트에 그를 포함시켰다. 지난달엔 음악계 차세대 주역을 선정해 ‘뉴 파워 제너레이션’(25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는데, 방시혁은 여기에도 이름을 올렸다. 미국 대중문화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해 그를 ‘인터내셔널 뮤직 리더’(23개팀) 중 한 명으로 치켜세웠다.

음악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음악평론가 미묘는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의 흐름에 둔감한 경우가 많은데 방시혁은 다른 것 같다”며 “유튜브나 SNS처럼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의 활용법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으며, 이런 능력이 지금의 방시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방탄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방시혁은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2017년 12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티스트는 누군가가 창조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방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순간 BTS는 객체가 돼버린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기엔) 나는 아직 미혼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