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겨울 햇살이 따뜻한 지난달 말, 1세대 전위예술가 이건용(77)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전북 군산 개정면 아산리. 작업실의 빨간 지붕이 밋밋한 시골 풍경에 악센트처럼 싱싱했다. 지난 7일 대구 중구 리안갤러리 대구점에서 개막한 개인전 ‘보디+스케이프=보디스케이프’전을 앞둔 시점이라, 작가는 이곳에서 몇 달째 두문불출했다.
천장 높은 작업실에는 서명을 끝낸 캔버스가 수북하게 포개져 있었다. 밑칠 작업만 한 채 브랜드가 된 ‘신체 드로잉’을 기다리는 캔버스도 있었다. 한 쪽에 세워둔 대형 캔버스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이게, 드디어 딱 1점 정면에서 그려본 겁니다.”
정면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 50여년 작가 인생 처음이라니. 작품 속 선은 어떤 신체적 제약도 가하지 않은 채 그어져 캔버스 위쪽에서 바닥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대형 캔버스에 선들이 몇 개 덩어리로 단락 지어진 것과 차이가 난다.
이건용은 1970년대 신체 드로잉으로 이름을 알렸다. 69년 비평가 김복영과 함께 아방가르드 미술그룹 ‘ST’를 창단했는데, 이 회원전에서 선보인 것들은 ‘정상적’ 회화는 아니었다. 작가는 합판 뒤에 서서 앞으로 손을 뻗은 뒤 그을 수 있는 범위만큼만 반복적으로 선을 그렸다. 그려진 면적을 잘라내면 합판은 높이가 낮아져 뒤에서 그을 수 있는 선의 길이가 더 길어진다. 작가는 그렇게 잘린 몇 개 합판을 이어 붙인다. 합판에는 부자유스러웠던 신체의 흔적을 증거하듯 길이가 다른 국수 다발 같은 선들이 포개져 있다. 어떤 건 캔버스를 뒤에 두고 팔을 휘둘러 그리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몸을 매개로 세계와 연결되기를 주창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리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연결이 된다. “맞아요. 배재고에 다닐 때 독일 유학파 논리학 강사가 있었어요. 그분 덕에 현상학, 실존주의 같은 철학에 푹 빠졌죠. 고 1때 대학 철학과 학술대회를 다녔어요. 아버지 양복을 입고 빵떡모자를 쓰고서요. 학회에서 마주친 분이 어느 대학이냐 묻기에 도망치다시피 나온 기억이 납니다.”
신체 드로잉은 대학을 졸업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70~80년대 유신시대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더 적극적으로 억압을 고발한 것은 ‘건빵 먹기’ ‘달팽이 걸음’ 같은 퍼포먼스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전에도 소개되고 있다. 건빵 먹기는 팔에 깁스를 한 채 건빵을 먹어 보이는 퍼포먼스다.
“건빵 하나 집어먹는 행위를 통해 그 시대가, 정권이 얼마나 우리의 자유를 구속했는 지를 말하고 싶었지요. 직접적인 언명은 힘들었으니….”
서러운 시절을 오래 보냈던 전위예술가들은 최근 몇 년 새 주목받고 있다.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 출발로서 이들이 재조명되는 것이다. 군산대를 정년퇴직한 작가에게도 최근 몇 년이 황금기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진 회고전 이후 현대갤러리(2016), 리안갤러리 서울점(2017) 등 상업갤러리에서도 전시를 했다. 지난해에는 페이스갤러리 베이징점에서 초대전을 했다.
최근 작품에서는 회화성이 강화된다. 매직펜 같은 드로잉이 아니라 유화 물감을 쓴다. “과거엔 개념을 전달하는 의미가 강했다면 이제는 감각성을 드러내고 싶어요. 나이가 드니 빨강 파랑 원색을 쓰고 싶고요.”
그럼에도 보지 않고 그린 선들은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안 보고 그려야 싱싱하지. 보고 그리면 아무래도 다듬고 싶거든.”
군산=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