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새벽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갑작스러운 굉음에 정적이 흘렀다. 술집에서 종업원의 팔을 깨문 혐의(상해)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홍모(28)씨가 “억울하다”며 테이블을 발로 차버린 게 화근이었다. 앞서 “나도 종업원에게 맞았는데 왜 종업원은 체포하지 않느냐”며 2시간 내내 고성을 지르던 홍씨는 클럽 ‘버닝썬’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만하라”는 경찰에게 그는 “술집에서 돈 받은 것 아니냐. 기자들을 부르겠다”고 맞받아쳤다. 연락 받고 지구대로 달려온 아버지에게는 “수갑 찬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으라”고 했다.
역삼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10일 “종업원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해봤지만 맞은 흔적이 없고 진술도 계속 바뀌었다. 결국 다음날 다시 와서 사과하고 가더라”며 “요새 주취 관련 신고로 출동을 나가면 절반 정도는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버닝썬 사태’ 이후 경찰 불신으로 인한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경찰은 “근거 없는 의심 때문에 정상적 업무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착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조사를 거부하거나 조사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SNS에 공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편파 수사’ 논란 이후 거듭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흥가 근처 지구대나 파출소는 새벽만 되면 고성이 오가기 일쑤다.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는 하루에도 2~3차례 소동을 겪는다고 한다. 지난 3일에는 클럽 가드를 주먹으로 때린 혐의(폭행)로 조사받던 30대 여성이 “클럽과 경찰이 유착돼 있다”고 주장했다. 만취 상태였던 그는 1시간30분 동안 귀가 조처를 거부하고 “클럽 가드도 날 때렸다” “내가 어디 가서 당할 사람 같아 보이느냐”고 소리질렀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의 얼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성범죄와 관련된 경우에는 신고자와 경찰 간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 김모(26)씨는 지난달 24일 인천아시아드 여자화장실에서 남성이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남성을 추격하면서 신고했는데 경찰은 남자가 맞는지만 계속 물어보고 뒤늦게 출동해 결국 놓쳤다”며 “CCTV 분석도 안 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강하게 항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나친 불신이 수사에 지장을 준다고 호소한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감은 “버닝썬 사건 이후 클럽 유착을 언급하면서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확실히 늘었다”며 “양쪽 말을 듣고 중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사비로 ‘보디캠’을 샀다는 한 경장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많아 구입했다”며 “촬영 중이라고 하면 더 물고 늘어지지 않더라”고 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경찰 관련 인권침해 진정은 2017년 1562건에서 지난해 1235건으로 줄었다.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은 “편파 수사 논란이 컸던 지난해 오히려 진정 건수는 감소했는데 이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불신의 범위가 더 넓어진 것으로,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지 않으려면 제도적 차원의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구승은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