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에 연루됐던 인도네시아 여성이 사건 2년여 만에 전격 석방됐다. 살인 혐의로 함께 재판받아 온 베트남 여성도 조만간 같은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을 ‘잘 훈련된 암살자들(well-trained assassins)’로 규정했던 말레이시아 당국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과 인도네시아,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한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검찰은 11일 김정남 살해 혐의를 받았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7·사진)에 대한 공소를 갑자기 취소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법원은 별도의 무죄 선고 없이 시티를 즉각 석방했다. 시티는 눈물을 흘리며 “(석방 결정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 매우 놀랐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시티는 석방 직후 인도네시아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관으로 이송됐고, 이날 밤 자카르타행 항공편으로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티는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31)과 함께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아 왔다. 두 여성과 함께 북한인 남성 5명도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 중 4명은 사건 당일 북한으로 도주했다. 나머지 1명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추방 조치됐다. 두 여성은 “TV 리얼리티 쇼를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자신들이 북한인들에게 속았다고 주장해 왔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공소 취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고위급 로비 활동이 시티의 석방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대통령과 부통령, 외교장관, 기타 장관 등 양국 간 접촉 때마다 시티의 구명을 촉구해 왔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 재집권 이후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흐엉은 시티의 석방 결정에 망연자실했다. 흐엉은 시티가 재판정을 떠난 뒤 통역을 통해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마음이 텅 비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흐엉 측은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심리 연기를 요청했다. 재판은 오는 14일 속개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 살해 사건을 사실상 덮는 쪽으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흐엉 역시 조만간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