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임창용(43)은 ‘풍운아’다. 한국과 미국 일본 프로야구에서 언제나 사나이다운 정면승부를 펼치며 ‘창용불패’ ‘애니콜’ 등 숱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원정도박, 감독과의 불화 등 ‘트러블 메이커’로 숱한 구설에 휘말렸다.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뒤 1995년 고향팀 해태(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임창용은 2년차이던 1996년 49경기에 나서 114⅔이닝을 책임지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으로 떠난 ‘국보’ 선동열의 후계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중무리(중간계투+마무리)’로서만 268⅔이닝을 던져 22승 60세이브를 올리며 선동열의 자리를 단숨에 메웠다.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해태는 1998시즌 뒤 그를 삼성 라이온즈에 팔았다. 팀을 옮겼지만 임창용은 삼성에서의 첫 6시즌동안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64승 108세이브로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5년 혹사 여파로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하지만 완벽한 재활로 3년 후 일본프로야구(NPB)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 특유의 ‘뱀직구’로 일본을 평정했다. 160㎞를 넘나드는 스피드에 특유의 궤적으로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꽃히자 일본의 내로라하는 강타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NPB 2년차인 2009년에는 개막 후 7월까지 33경기 동안 단 1자책점도 내주지 않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2013년에는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에 입단해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다. 2014년 삼성으로 돌아온 임창용은 복귀 후 두 시즌 동안 64세이브를 올리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해외에서 불법 원정도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삼성은 시즌 종료 뒤 그를 방출했고, 천신만고 끝에 KIA가 임창용을 붙잡으며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KIA에서도 임창용은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145㎞를 넘나드는 공을 던지며 지난해 팀의 가을야구 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과의 불화설이 터지며 임창용은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감독의 고유권한인 ‘선수 출전’ 여부를 놓고 김 감독과 마찰을 벌인 게 결정타였다는 후문이다. 임창용은 현역 연장 의지를 굽히지 않았지만 그의 ‘트러블 메이커’ 인식 때문에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임창용의 에이전트사인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은 11일 “임창용이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임창용은 “막상 은퇴한다고 하니 시원섭섭하다”며 “이제는 선수로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한국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은퇴소감을 전했다.
임창용은 한·미·일에서 통산 24시즌 1004경기에 나섰다. 한국에선 130승 86패 258세이브, 일본에선 11승 13패 128세이브를 올렸고 MLB에서는 승패없이 5이닝만을 던졌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