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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죄’의 마지막 기회 걷어찼다

11일 광주지방법원으로 들어서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 ‘발포명령 내린 것을 부인하느냐’ 등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거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최현규 기자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렵게 찾아온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할 기회였으나 그는 눈을 감고 졸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딴전을 피웠다.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11일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방법원 201호 대법정에 섰다. 1996년 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 혐의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지 23년 만에, 5·18민주화운동 이후 39년 만에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법의 심판대에 선 것이다. 하지만 전씨는 광주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끝내 보듬지도, 어루만지지도 않았다.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 이후 10개월 동안 재판을 거부해온 전씨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이날 재판에서 사죄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전씨 측은 기존 입장대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전씨는 변호인을 통해 5·18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전씨 측 법률대리인 정주교 변호사는 “본인의 기억과 국가기관의 기록, 검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라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5·18 당시 광주에서 기총소사는 없었지만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비오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이어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한 것으로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검찰은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씨가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 신부의 명예를 고의로 훼손했다는 것이다.

법정에 선 전씨는 고령과 알츠하이머 발병을 재판부가 알아달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재판 진행에 나선 재판장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자 그는 “재판장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헤드셋을 쓰기도 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전씨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지만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고 재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부에 별도의 편지만 전달했다. 재판장은 이 편지에 대해 “재판부에 당부하는 사항, 재판에 임하는 느낌 등을 적은 글로 이해하겠다”고 설명하며 재판을 마무리지었다.

전씨 부부는 재판이 끝난 직후 몇몇 방청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언성 높여 항의했으나 앞만 물끄러미 쳐다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방청객들의 한숨 섞인 탄식과 격앙된 목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전씨 부부는 법정을 빠져나와 30분 정도 청사 내부에 머물다 오후 4시15분쯤 법원 건물을 빠져나갔다.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할 마지막 기회마저 발로 차버쳤다”는 한 시민의 목소리가 법원 주변에 메아리쳤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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