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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속 세상] 숱한 땀 서려 있지만 쇠퇴해 애잔한 탄광촌의 봄

빛 한줌 없는 지하 600m 갱도 안. 헤드램프에 비치는 것은 흩날리는 석탄 가루뿐이다. 갱도 안은 30도를 웃돌아 땀으로 흥건한 얼굴엔 석탄재가 달라붙는다. 선명히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의 흰자위뿐. 무지막지한 막노동의 현장, ‘막장’이다. 지난달 28일 임용귀씨가 석탄 채굴 작업을 하고 있다.
 
탄광촌에도 봄은 올까. 지난달 29일 화순시 탄광촌이었던 동암마을 인근의 한 밭에 핀 봄꽃 위로 산화한 연탄이 버려져 있다. 읍내에도 없던 극장과 병원이 들어섰던 탄광촌의 영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옛이야기가 되었다.
 
노역의 시작은 늘 인차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차란 갱도 안에서 이동할 때 사람이 타는 차를 뜻한다. 광부들이 지상에서 수직으로 600m 아래에 위치한 채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인차를 타고 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광부들이 광업소 직원 전용 목욕탕에서 석탄재를 씻어내고 있다. 화순광업소 광부들은 주야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주간팀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야간팀은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다.
 
화순광업소의 귀염둥이 막내들인 임용귀(오른쪽)씨와 김용승씨가 휴식을 취하던 중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다. 그들은 광업소에서 일한 시간보다 정년(60세)까지 일할 시간이 더 많이 남은 젊은 일꾼들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막장에서 일하고 있으믄 이마고 어디고 땀이 안나는 곳이 없시야, 장화에도 땀이 흥건해가꼬 뒤집으믄 물이 몽신 흘러븐당게, 그래도 난 내 삶의 터전인 막장이 좋아브러야”라고 말했다.


‘탁탁탁’ 마른가지 한데 모아 연탄에 불을 붙인다. ‘치직치직’ 마찰음 소리와 함께 연탄구멍 사이로 불길이 치솟는다. 시뻘건 연탄의 타는 냄새가 퍼지고 온기가 마을을 감싼다. 너도나도 연탄을 재워놓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활활 타오르던 연탄의 불길이 꺼져 간다.

“사양 산업이 되어버린 석탄 산업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요. 산업전사로 역경의 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1, 2년 뒤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케빙’ 작업을 하는 임용귀(45)씨는 2대째 광부 일을 이어오고 있다. 케빙 작업은 ‘막장’ 안에서도 최전선에서 발파와 채굴을 담당하는 업무로 가장 위험한 일에 속한다. 몇 년 전부터 구조조정과 폐광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이지만 신규 채용이 없어 막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석탄은 액화천연가스(LNG)와 유류시장의 확대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9년 한해에 70만t을 생산했던 화순광업소는 올해 생산계획 기준 10만t으로 7배가 줄어들었다. 줄어든 생산량만큼 직원 수도 현저히 줄어 700명에 달했던 채굴 근로자는 현재 55명만이 남았다. 1700명까지 달했던 총 직원 수는 직주근로자 160명과 외주근로자 220여명을 합해 380여명으로 줄었다. 광업소 앞 즐비했던 상점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탄광촌은 이마저도 유지가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석탄을 캐는 비용보다 수입해서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한 탓에 수입 비중이 크게 오르고 있어서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광업소의 근로자들 또한 이해하고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산업영웅이었으나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광부들은 생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도 임씨는 웃으며 말한다. “제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회사가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람 아니겠습니까.”

화순=사진·글 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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