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첫 공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과 명예훼손 고의성 여부를 따지는 검찰과 전씨 측의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진행됐다. 전씨 측이 이미 여러 경로로 확인된 5·18 헬기사격을 ‘사실’이 아닌 ‘쟁점 사안’으로 몰고 가려는 전략을 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전씨는 모두발언에 이어 재판장이 피고인과 변호인 출석 등을 확인하자 입술을 굳게 다물고 경청했다. 하지만 검사와 변호인 발언이 길어질 때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A4용지 4장 분량인 전씨의 공소사실을 1장짜리 자료로 압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5·18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피고인은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상자들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에게 이 사건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공소하게 됐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회고록에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었지만 1996년 당시 검찰 수사기록 등에 따르면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다수의 진술이 있었다”고 추궁했다. 전씨가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한 회고록을 집필하고 배포해 고인이 된 피해자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고의로 훼손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사실 적시 이후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묻자 전씨 측은 “피고인이 그동안 독감 등으로 법정에 출석하지 못해 매우 송구스럽다”며 반박에 나섰다. 전씨 측은 먼저 “검찰의 공소장에는 출판사 주소를 범죄지로 적시하고 있는데 범죄의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법원 관할이전을 해 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전씨 측은 종전 관할이전 신청에서 격을 높여 형사소송법 319조에 의한 관할위반 판결을 정식으로 선고해줄 것을 신청했다.
헬기사격은 물론 회고록을 통한 명예훼손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전씨 측은 “당시 헬기사격은 없었다. 설령 있었더라도 조 신부가 목격했다는 5월 21일은 아니다”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부인했다. 전씨 측은 “회고록이 판매됐어도 독자가 구입한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명예훼손은 성립될 수 없다”며 “독자가 읽었더라도 책의 내용을 불신한다면 피고인 범죄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광주지역에서 책의 판매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사자명예훼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논리도 폈다. 단순한 ‘추상적 위험’만으로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적시한 전씨의 죄를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씨 측은 고 조 신부 등이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재판장은 그러나 “객관적 입증이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출판물로 인해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에서 명예훼손의 결과발생에 대한 위험성만 있다면 처벌해야 옳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라고 언급했다. 관할이전 신청에 대해서도 “변호인께서 관할이전을 주장했지만 피고인이 어렵게 출석했으니 일단 재판절차를 마치고, 재판을 진행하다가 관할위반이 판단되면 그때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거목록 열람 등을 확인하고 증거조사 등을 위한 다음 재판일을 4월 8일 오후 2시로 정한 뒤 재판을 마쳤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