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과 허풍쟁이 딜레마에 빠진 북·미, 2~3개월 대치 후 협상 전망



북한과 미국이 2차 정상회담 결렬 후 열흘 넘게 장외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미사일 시설 복구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미국은 단계적 비핵화 대신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는 일괄타결론을 내세우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북·미 간 입장차가 커 대화는 한동안 겉돌겠지만 양쪽 지도자가 처한 딜레마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교착 국면은 2~3개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1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전에) 핵 폐기 약속을 수차례 번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은 상태로 ‘양치기 소년 딜레마’에 빠져 있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론이 특유의 ‘블러핑(허세 부리기)’이 아님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비핵화 협상을 성공시켜야 할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북한은 핵 폐기를 약속한 뒤 도발하고 다시 협상에 나서는 행태를 거듭해 왔다. 최근 위성사진을 통해 재건 정황이 포착된 평북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전문가 참관 하에 영구 폐기하겠다고 밝힌 곳이다. 폐기를 약속한 곳에서 보란 듯이 복구 움직임을 드러냄에 따라 미 정가에서 대북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전 “1차 회담보다 더 대단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한껏 높였으나 결국 ‘노딜’ 회담으로 충격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선 최근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면에 나서서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일거에 폐기하는 빅딜론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미 간 아슬아슬한 대치가 대화 재개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 복구가 미국 내 안보 위기감을 키울 것이고, 볼턴 보좌관의 강경 자세가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 필요성을 절감하게 할 것”이라며 “교착 상태는 한두 달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미완 상태인 핵 협상을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올 상반기 내 3차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이 먼저 협상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강자와 약자 협상에서 약자가 양보하는 것은 굴복으로 비칠 수 있다”며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미국이 먼저 양보해야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주말 사이에 중국을 비공개로 방문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대화 노선 이탈을 막기 위한 공조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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