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유벤투스)를 보낸 레알 마드리드는 대역전극의 희생자가 됐고, 그를 데려온 유벤투스는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부진했던 호날두가 벼랑 끝에서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로 돌아왔다. 호날두의 부활로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둘러싼 우승 후보들의 8강 이후 승부 역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호날두는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1차전 원정에서 0대 2로 완패했던 유벤투스는 1·2차전 합계 3대 2로 뒤집으며 8강에 안착했다. 유벤투스가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1차전에서 2골차 패배를 당한 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역전극의 시작과 끝에는 호날두가 있었다. 호날두는 전반 27분 상대 수비와 경합하면서 헤더로 첫 골을 터뜨렸다. 후반 4분 두 번째 헤더 역시 골문을 살짝 통과해 1·2차전 2-2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후반 41분엔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가 얻은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성공시켜 또 한 번의 극장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해트트릭으로 호날두는 리오넬 메시가 갖고 있던 챔피언스리그 최다 해트트릭(8번)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호날두는 이날 활약으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호날두는 이날 3골을 포함해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골(124골) 기록을 갖고 있지만, 올 시즌엔 이 경기 전까지 1골만 넣었다. 토너먼트 첫 경기인 16강 1차전에서도 단 1개의 유효슈팅만을 기록했다. 당시 호날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손가락 5개를 펼쳐 응수하는 등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자신이 챔피언스리그에서 5번 우승했다는 의미였다. 호날두는 2차전 승리 후 1차전에서 논란이 된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이 했던 세리머니를 그대로 따라하며 1차전 굴욕을 되갚았다. 시메오네 감독은 16강 1차전 승리 후 양손을 자신의 특정 부위에 갖다 대며 하반신을 흔드는 과격한 동작으로 2만 유로(약 2550만원)의 벌금을 무는 제재를 받았다.
1996년 이후 23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는 유벤투스로선 호날두의 가치를 재확인한 경기였다. 유벤투스는 마지막 우승 이후 5차례(97·98·2003·2015·2017년)나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빅 이어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구단 역사상 최고액인 1억 유로(약 1300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호날두를 데려온 것 역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호날두는 경기 후 “이것이 유벤투스가 나를 데려온 이유”라며 “유벤투스가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내가 왔다)”고 말했다.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시 맹활약을 펼치면서 다른 팀들의 경계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호날두는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3골을 기록했다”며 “다음 라운드에서 상대할 팀과 선수들의 수준이 이렇다”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BBC스포츠는 호날두의 리그 출전시간이 이미 지난 시즌 전체 리그 출전시간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호날두의 리그 휴식이 많아질 경우 유벤투스의 우승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