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미사일 실험만 안했을 뿐 핵 프로그램 계속 진행

북한 선박들이 지난해 8월 17일 남포항 원유저장시설 부근에 모여 있다. 이 사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12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공개했다(위쪽 사진). 북한 선박 육퉁호가 지난해 10월 28일 해상에서 다른 선박에 화물을 불법 환적하고 있다(아래 왼쪽 사진). 북한이 석탄 등을 불법 수출하고 받은 달러 뭉치가 선박에서 적발됐다(아래 오른쪽).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영변에서 핵 프로그램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연례 보고서를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제재위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온전(remain intact)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보고서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만 중단했을 뿐 사실상 관련 활동을 은밀히 계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나온 이번 보고서가 북한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한 회원국은 영변 원자로 가동이 지난해 9∼10월 중단됐다는 사실을 지난해 11월 제재위에 보고하면서 “그 두 달 동안 사용후핵연료봉 인출이 일어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론된 시기는 지난해 9월 19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점이다. 그밖의 기간은 영변 원자로가 계속 가동된 것으로 보인다고 회원국은 보고했다.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촬영된 영변 위성사진에는 수로를 위한 땅파기 공사와 기존 방류시설 주변에서 건물 신축 모습이 포착됐다. 한 회원국은 신축 구조물에서 지난해 6월 중순 냉각수 방류를 확인했다고 제재위에 통보했다.

제재위는 영변 핵시설 내 실험용 경수로 서쪽에 새로운 건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위성사진은 방사화학실험실이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제재위는 특히 전문가 패널이 원심분리기를 은밀히 구매한 아시아의 단체(기업)나 개인들에 대해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원심분리기 구매를 시도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회원국은 제재위에 북한이 핵·미사일 생산·조립 시설이 공격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간 공장이나 비군사시설 등을 반복적으로 활용했다고 통보했다. 이 회원국은 또 북한 평성 트럭공장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이 조립됐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북쪽 국경 인접 지역에 ICBM 기지들을 개발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 제재위에 보고했다. 제재위는 북한이 미사일의 조립·저장·실험 장소를 분산시켜 왔다는 증거를 확보했으며 북한은 방치되거나 무분별하게 있었던 군사시설을 발사 장소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제재위는 또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위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재위는 북한이 ‘선박 대 선박(ship-to-ship)’ 환적 수법을 이용, 지난해 1월부터 8월 18일까지 최소 148차례 해상에서 정제유를 밀수입했다고 주장했다. 제재위는 북한의 불법적인 선박 간 환적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됐으며 정유제품과 석탄 밀거래가 증가하면서 대북 제재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선박 간 환적에 활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홍콩에 등록된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마린체인’에 북한 국적 인사가 참여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제재위는 이어 북한이 금융 제재도 회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정찰총국은 유럽연합(EU)에서 폐쇄된 계좌의 자금을 아시아의 금융기관 계좌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재위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차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과 롤스로이스 팬텀, 렉서스 LX570도 제재 위반 사례로 지적했다. 모두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대북 수출이 금지된 사치품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 전용차가 북측으로 흘러들어간 경위는 밝혀내지 못했다. 제재위 관계자는 “제재는 김 위원장에게 가장 큰 문제”라며 “석탄이나 석유 제품의 은밀하고 불법적인 선박 간 환적으로 수십 년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택현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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