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명문대 입학에 집착하는 부유층 부모들과 그 욕망을 꿰뚫은 입시 전문가가 초대형 대입 비리를 저지르는 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 유명 입시 컨설턴트가 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스탠퍼드와 예일, UCLA 등 명문대의 운동부 코치와 시험 감독관들을 매수해 학생들을 입학시킨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입시 코디네이터가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온갖 범행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그려낸 한국드라마 ‘스카이캐슬’과 똑 닮은 모습이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검찰은 할리우드 배우와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30여명이 입시 전문가를 통해 명문대 관계자들에게 뒷돈을 주고 자녀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부정 입학시켰다고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스탠퍼드와 예일, UCLA, 조지타운, USC, 텍사스대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
부모들은 입시 전문가인 윌리엄 싱어에게 2011년부터 8년간 총 2500만 달러(약 283억원)에 이르는 돈을 건넸다. 이는 미 역대 입시 비리 중 최대 규모다. 연방검찰은 싱어와 학부모, 명문대 관계자 등 50여명을 모두 기소했다. 부모 중에는 인기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한 펠리시티 허프먼, 시트콤 ‘풀하우스’에 나온 로리 러프린, 그의 남편 패션 디자이너 모시모 지아눌리, TPG캐피털 창립자 윌리엄 맥글래션 주니어 등이 포함됐다.
사건의 중심에는 유명 입시 전문가인 싱어가 있다. 20여년간 캘리포니아주에서 대입 컨설팅업체를 운영해온 싱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학의 졸업장을 따게 해주겠다”고 공언했었다. 싱어는 자신을 ‘마스터 코치(master coach)’라고 부르기도 했다.
싱어의 범행 수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학생들이 자신이 매수한 시험 감독관이 있는 고사장에서 SAT와 ACT 등 대입시험을 치르게 한 뒤 감독관에게 답안지를 바꿔치도록 지시했다. 부모들이 자녀가 ‘학습 장애(learning disability)’를 가지고 있다는 허위진단서를 교육 당국에 제출하면, 학생들은 싱어와 공모한 감독관이 있는 휴스턴과 로스앤젤레스의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는 식이었다. 싱어는 학부모들에게 “ACT는 30점대, SAT는 1400대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자신하며 돈을 받아냈다. ACT와 SAT의 만점은 각각 36점, 1600점이다.
싱어는 체육특기생을 지망하는 학생들의 경력을 꾸며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의 수상 경력을 지어내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스포츠 경기에 참여한 것처럼 사진을 위조하기까지 했다. 실제 운동선수 사진에 수험생 얼굴을 합성하기도 했다. 싱어에게 매수된 운동부 코치들은 이런 범행을 모른 척 넘어갔다. 이 수법으로 명문대에 부정 입학한 학생들 중 자신의 전공에 해당하는 스포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싱어는 학부모들에게 받은 돈을 세탁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11일 보스턴 연방법원에 출석한 싱어는 사기 공모, 공무집행 방해, 돈세탁, 탈세 4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미국 시민들은 상류층 중심으로 대형 입시 비리가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공분하고 있다. 앤드루 랠링 매사추세츠주 연방검사는 “이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라며 “자격 없는 학생들과 부모들이 손쉽게 명문대 입학증서를 돈으로 산 것”이라고 비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입시 전문가는 “싱어가 저지른 범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개인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한 짓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