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이상훈(48)과 ‘팔방미인’ 심재학(47). 이상훈은 LG 트윈스의 레전드로서 1990년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를 호령했다. ‘강견’으로 유명한 심재학은 투수와 타자를 오가며 LG와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등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두 레전드가 21년 만에 다시 만났다. 화려한 현역 시절과 긴 지도자 생활을 뒤로 하고 나란히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새출발한다. 이제 ‘새내기’ 해설위원이 된 두 사람을 13일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시범경기가 열리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났다.
다시 뭉친 고려대 듀오
이 위원과 심 위원은 고려대 2년 선후배 사이다. 이 위원은 “내가 이긴 거의 모든 경기에서 심 위원이 결승점을 올려준 것 같다”며 “고려대는 심 위원 없으면 ‘시체’였다”며 웃었다. “왜 이러실까”라며 손사래를 친 심 위원은 “수비를 하러 나가 있으면 이 위원이 삼진을 열 몇개씩 잡았다. 나는 마음 편하게 타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이 위원과 심 위원은 각각 1993년과 1995년 1차 지명을 받아 LG에 입단했다. 둘은 97년 철벽 마무리와 주축 타자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기도 했다. 다만 이 위원이 이듬해 일본으로 떠난 뒤 미국을 거쳐 2002시즌 LG로 돌아왔지만 심 위원이 2000시즌을 앞두고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돼 더 이상 한솥밥은 먹지 못했다. 야구로 맺어진 인연은 올해 다시 이어졌다. 이 위원과 심 위원은 각각 지난해까지 맡은 LG 피칭아카데미 원장과 넥센(현 키움) 코치직을 내려놓고 올 시즌 해설위원으로 나선다.
‘투수외길’ 이상훈
이 위원은 은퇴 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와 두산에서 투수 코치를 거친 뒤 LG의 피칭아카데미 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은 “여러 군데서 코치를 맡은 게 내게 큰 도움이 됐다”면서도 “내게 가장 많은 깨우침을 준 지도 대상은 여자야구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더라”며 “야구 얘기뿐 아니라 사는 이야기들도 나눴는데 그런 경험이 모두 내게 재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야생마’ 이 위원은 당대 최고의 투수로 유명하다. 그런 경험이 해설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 위원은 “사실 투수에게는 타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직면한 상황이 문제”라며 “주자나 양팀 점수차 등 상황에 따라 약한 타자도 정말 무서운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투수로서 많은 타자들을 경험한 만큼 내가 마운드에 선 기분으로 해설을 할 수도 있고,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기술적 요소와 곁들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방미인’ 심재학
심 위원은 선수 생활 대부분을 중심타선에서 활약했지만 99년에는 LG의 권유로 1년 내내 투수로 나선 이력이 있다. 심 위원은 “훈련 중 이 위원 옆에서 장난삼아 몇 개 던져봤는데 148㎞가 찍혔다. 이게 투수 전업의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3승 3패 평균자책점 6.33으로 부진했다. 심 위원은 “단기간에 선발투수로 전업해 뛰려다보니 무리를 해 통증을 안고 던졌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1년간 투수들의 애로사항, 심리 등을 파악하는 동시에 투수가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걸 배웠다”고 회상했다.
코치로서는 투수코치를 제외하고 넥센에서 타격·수비·주루·수석까지 모든 보직을 경험했다. 심 위원은 “주루코치로 나서던 시즌에는 잠시도 판단이 흐트러지면 안 돼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어렵게 코치직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양한 보직을 맡은 만큼 야구의 모든 면을 이야기하는 해설에 맞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민성 눈여겨봐야
이 위원은 올 시즌 주목할 선수로 지난 5일 LG에 사인앤트레이드 형식으로 입단한 3루수 김민성을 지목했다. 이 위원은 “새로운 얼굴이잖나. 유니폼을 갈아입고 남다른 각오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제부터 LG의 주축이 돼야 할 선수다. 계약이 늦었는데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보일지 호기심이 간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넥센에서 김민성을 지도한 심 위원도 “어린 시절부터 정말 성실했고 동료들과 잘 어울린 선수”라고 칭찬했다.
심 위원은 키움의 임병욱과 김혜성도 들었다. 아무래도 직전까지 몸담은 곳이니 만큼 애정이 남다른 듯했다. 심 위원은 “키움이 2번에 박병호를 배치했다. 그러면 하위타선의 출루율이 중요해진다”며 “키움 상위타선에 최고의 타자들이 포진한 만큼 하위타선에 나설 두 선수가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