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연례적으로 발표하는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을 삭제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미 국무부는 13일(현지시간) ‘2018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내놓으면서 2017년 보고서에 있었던 “북한 주민들이 정부의 지독한(egregious) 인권침해에 직면했다”는 문구를 뺐다.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의향을 재차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가 발표한 2018년 북한 인권보고서는 북한 내 인권침해와 관련해 ‘정부에 의한 불법적 살인’, ‘정부 주도의 실종’, ‘당국에 의한 고문’, ‘공권력에 의한 임의 구금’ 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독한 인권침해’라는 표현은 삭제했지만 열악한 인권 상황에 김정은 정권의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북한 인권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미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거론하지 않고 언론 보도, 인권단체의 보고서, 탈북민들의 주장 등을 간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피해갔다. 보고서는 2012∼2016년 북한에서 340건의 공개처형이 이뤄졌고 전기 충격, 물고문, 극심한 폭행 등의 방식으로 고문이 자행됐다는 점을 지적했으나 이는 언론 보도나 연구 보고서 등을 인용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엄마에게 영아살해를 강요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와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이뤄지는 잔혹한 인권침해 실태도 언론 보도 인용 방식으로 언급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식물인간 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와 숨진 오토 웜비어 사건도 거론하지 않았다. 납치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는 북한의 반박 입장도 이례적으로 포함시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현재 조선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추가한 것도 눈에 띈다.
국무부는 한국 관련 인권보고서에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과 접촉해 북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보류할 것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탈북민들이 문재인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비판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중연설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더디게 진행했으며 북한인권대사 자리가 1년 넘게 공석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것(북한 비핵화)이 갈 길이 먼 여정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원하고, 그가 그 (비핵화) 길을 따라 걸으려고 한다는 데에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정보기관 총책임자인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이달 중 방한한다. 정부 소식통은 14일 “코츠 국장의 방한 일정을 한·미 정보 당국이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반도 정세가 민감할 때 방한해 왔던 코츠 국장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이뤄지는 이번 방한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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