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충, 집단 내 전파력이 강해 약물 내성 때문에 구충제 먹어도
치료 안되는 ‘난치성 요충증’까지 “일부 아닌 전국 실태 조사 필요”
지난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가양어린이집. 7세반 아이들이 앞에 앉은 낯선 선생님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끗 세웠다.
“친구들. 외출하고 들어올 때, 밥 먹기 전, 화장실 다녀와서, 놀이터에 갔다 와서 꼭 손씻기 하나요? 오늘은 새벽에 우리 똥꼬에 알을 낳고 도망가는 요충에 대해 말해 줄게요.”
한국건강관리협회(구 기생충박멸협회) 서울서부지부 김현주 교육홍보 차장이 아이들에게 생소한 기생충과 검사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1일 교사로 나섰다. 김 차장은 아이들 표정을 살피며 “매일 손씻기를 습관화하지 않으면 똥꼬에 요충이 알을 낳고 배가 아플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이어 “벌레가 있는지 보기 위해 아침에 엄마·아빠가 이런 ‘핀 테이프’로 친구들 똥꼬 주위에 붙였다 떼서 가져오면 현미경 검사를 하게 된다”며 아기 인형으로 검사법을 시연했다. 아이들은 “안 아파요?” “벌레가 커요?” 등 질문을 쏟아내며 관심을 보였다. “혹시 친구들 몸 속에 요충이 있는 걸로 나오면 알약을 줄거니까. 용법에 따라 먹으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답니다.”
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는 지난달부터 강서구내 어린이집 430여곳에서 어린이 요충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7세까지 아동이 대상이다. 질병관리본부와 건강관리협회가 매년 이맘 때부터 8월까지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는 ‘장내 기생충(11종) 검사 및 퇴치 사업’과는 별도로 추진 중이다. 서울시에서 강서구가 올해 처음 시작했다. 요충은 5군 법정 감염병이다.
김현주 차장은 “국내 요충 감염률이 낮아지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건강에 위해한 상황이며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등 취학 전 어린이시설에서 집단감염 문제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들은 이달부터 자녀 요충 검사의 보호자 협조를 요청하는 가정 통신문과 함께 항문 검사용 ‘핀 테이프’를 아이들에게 들려 보내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는 15일 이내에 개별 통보하고 요충 감염자는 의사 진료와 구충제를 무료로 지원한다.
강서구 관계자는 “요충은 집단 내 전파력이 강한 만큼 양성자가 1명이라도 나온 어린이집의 원아는 물론 가족, 교사들도 원하면 추가 검사를 무료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충은 암컷의 꼬리 끝이 뾰족해 ‘핀 벌레(pinworm)’라고도 불린다. 암컷은 길이가 8~13㎜로 수컷(2~5㎜)보다 전체적으로 크다. 다른 장내 기생충과 달리 사람이 유일한 숙주다. 맹장에서 기생한다. 기생하는 동안 산란하지 않고 충란을 자신의 자궁 속에 쌓아 놓는 점도 다르다. 최대 1만3000개까지 채울 수 있다. 충란이 유충으로 자라는 데는 약 4~6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성충 암컷이 다 자라면 항문 밖으로 기어나와 여러 시간에 걸쳐 주변에 알을 낳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요충에 감염되면 먼저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 발적(붉게 올라옴), 피부염 등이 생긴다. 어른들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항문 주변을 긁게 되고 그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재감염될 수 있다. 또 긁는 과정에서 요충 알이 속옷, 이불, 바닥, 가구 등에 떨어져 붙거나 먼지처럼 날려다니며 가정이나 어린이시설 등에서 가족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쉽게 옮아간다.
질병관리본부 매개체분석과 주정원 연구사는 “요충은 밤에 잠자는 동안에 항문 밖으로 나와 알을 낳기 때문에 아침 일찍 보호자가 아이 항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에서 깬 성충이 실처럼 움직이는 걸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요충 검사는 아침 일찍 씻기 전에 핀 테이프의 끈끈한 면을 아이의 항문에 둘러 요충 알이 들러붙게 한 뒤 수거해서 현미경 관찰로 진행된다. 주 연구사는 “요충 알은 침구나 속옷 등에 붙어 2~3주간 감염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공간을 함께 쓰는 어린이 집단에서 활발하게 전파된다”고 덧붙였다.
요충 감염은 치명적이진 않지만 2차적으로 세균 감염이나 소화불량, 설사, 복통, 맹장염 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심한 가려움증 때문에 아이가 불안해거나 신경질, 불면증, 야뇨증(밤에 오줌 지림), 학습장애 등 정서적·정신적 문제를 보일 수도 있다. 성충은 항문 주변에 알을 낳은 후 대개 죽는다. 드물게 알에서 깨어난 뒤 항문으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학선 부산대 의대 기생충 및 열대의학교실 교수는 “특히 여아의 경우 드물게 생식기로 기어들어가 ‘이소(異所) 기생’을 하기도 하는데 질염이나 난소염, 나팔관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최근엔 약물 내성 때문에 수주 내지 수개월간 구충제를 먹어도 치료되지 않는 ‘난치성 요충증’ 사례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며 “특히 동침자가 많을수록, 손가락을 자주 빨수록, 항문 가려움 경험이 많을수록 난치성 요충증 감염이 많았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어린이는 기생충 감염에 따른 불편감이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며 부모나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알리지도 못하기 때문에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당국은 2011년부터 표본 감시를 통해 지역별 요충 발생 현황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매년 128~445건씩 요충 감염 신고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감염자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질병관리본부가 2017~2018년 전국 8개 시·군 245개 어린이집 및 유치원 7세 이하 어린이 1만1153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요충 감염률은 2.4%였으며 지역별로는 0.8%에서 6.8%까지 다양했다. 남아의 감염률이 2.8%로 여아(1.6%) 보다 높았다. 연령별로는 7세가 4.0%로 가장 높았다. 전체 참여 어린이집의 38.8%(95곳)에서 요충 감염자가 1명 이상 나왔다. 특히 2개 지역 유치원의 경우 최고 33.3%까지 요충 감염이 확인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내 반별 감염률은 최저 2.4%에서 최고 60%까지 차이났다. 주 연구사는 “요충 감염이 전반적 환경 개선과 위생 관리로 낮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어린이 집단에 편중돼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어린이 시설 등의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부산대 유학선 교수는 “최근 일·가정 양립 문화의 확산으로 어린이집 등원 연령이 낮아지고 머무는 시간도 길어져 요충에 감염될 수 있는 연령 또한 아동에서 영·유아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적인 실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 민물고기 생식 많은 낙동강 등 4대강 유역 간흡충 검사 돌입
지난해 감염률 소폭 상승… 질본 “민물고기 익혀 먹어야”
보건당국이 이달부터 낙동강과 섬진강 영산강 금강 등 주요 하천 인근 36개 시·군 주민 3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간흡충(간디스토마) 등 11종의 장내 기생충 감염 감시에 본격 돌입했다.
민물고기 생식이 많은 이들 지역에서 오는 8월까지 진행되는 장내 기생충 퇴치 사업은 질병관리본부와 건강관리협회가 함께 참여한다. 지난해 이들 지역 주민 4만4700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감염률 조사에서는 간흡충 4.1%, 장흡충 2.1%, 편충 0.2% 순으로 높았다. 모두 7종의 기생충이 검출됐으나 회충 등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강별 감염률은 섬진강이 7.9%로 가장 높았고 낙동강(6.6%) 금강(6.3%) 한강(4.1%) 영산강(2.9%) 순이었다.
전체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지난해 6.5%로 전년(5.0%)보다 약간 높아졌다. 간흡충 감염률도 지난해 4.1%로 전년도(3.9%)보다 소폭 증가했다. 간흡충 유충은 참붕어 돌고기 등 민물고기의 살을 파고들어 알을 낳고 산다. 이들 유충이 든 민물고기를 날로 먹으면 사람도 옮을 수 있다. 민물고기 조리 시 오염된 주방 도구를 통해서도 간접 감염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18일 “회충 등 토양매개 기생충은 퇴치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간흡충 등 식품매개 기생충 질환은 주요 강 지역에서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며 “민물고기는 꼭 익혀 먹고 조리 도구는 끓는 물로 소독 후 사용해야 하며 과거 민물고기 생식 경험이 있는 사람도 각 지역 보건소에서 검사받고 감염이 확인되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간흡충 감염은 담도암을 일으키는 걸로 알려져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