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보였나요 내가 울고 말았나요 아니야 아니야…싫다고 갔는데 밉다고 갔는데…잊어야지 잊어야지 어차피 떠난 사람.’ 예전에 인기 좀 있던 노래 ‘어차피 떠난 사람’ 가사입니다. 앞으로는 잘하겠다며 달래고, 사정하고, 매달려도 봤지만 떠나버린 사람이 생각나 괴롭다네요.
‘어대김’이니 ‘어대황’이니 하는 말이 돌아다닌 적 있지요. 한 정당 대표 선거에서 ‘어차피 대세는 ○’이라는 뜻이었다는데, 해보나 마나 한 선거라는 어감이 들어 좀 우스꽝스러웠습니다.
흔히 쓰는 어차피(於此彼)는 의외로 한자어입니다.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이렇거나 저렇거나’ ‘어쨌거나’ 등의 뜻을 가진 어차피는 ‘於此於彼’가 원말로 반복해 쓰인 於자 하나가 생략된 형태입니다. 於는 처소격인 ‘~에(서)’, 비교격인 ‘~보다’로 해석되는 조사이지요.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에 두 번 나오는데 앞의 것이 ‘~에서’, 뒤의 것이 ‘~보다’로 쓰인 예입니다. 此는 이것, 彼는 저것입니다. 此彼를 거꾸로 하면 彼此가 되는데, 저것과 이것, 저쪽과 이쪽이라는 말이지요. ‘창피한 건 피차일반일세’처럼 양쪽이 서로 같은 처지라는 의미의 피차일반(彼此一般)에 쓰였습니다.
결론을 말하거나 어떤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어차피를 버릇처럼 쓰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글의 일관성을 허물어뜨려 논리의 합리성, 적절성을 스스로 해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작문을 할 때 각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서완식 어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