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반(反)이민 정서에서 비롯된 테러와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참사, 네덜란드 트램 총기난사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 이민자가 반난민 정책에 앙심을 품고 학생 50여명이 탄 스쿨버스에 불을 질렀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로 촉발된 반이민주의가 각종 사건사고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20일(현지시간) 북부 크레모나에서 중학생 51명과 교사 등을 스쿨버스에 태워 납치하고 버스에 불을 지른 혐의로 세네갈 출신 운전기사 우세이노 시(47)를 체포했다. 시는 50여명이 탄 버스에 불을 질러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으나 한 학생의 용기 있는 신고와 현지 경찰의 발빠른 대처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일촉즉발의 연속이었다. 크레모나의 한 공립 중학교 운전기사로 일하는 시는 평소처럼 학생들을 태우고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를 몰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시는 밀라노 리나테 공항으로 향하면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루이지 디 마이오와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그는 또 “이탈리아로 오다가 지중해에 빠져 숨진 딸들에 대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어 “움직이면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며 교사 2명에게 학생들의 손목을 케이블 타이로 결박하라고 지시했다. 휴대전화도 모두 빼앗았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 한 대를 발견한 13살 학생이 몰래 끈을 풀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교사들은 학생들의 손을 일부러 느슨하게 결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는 50여명을 납치한 버스를 몰면서 경찰과 살벌한 추격전을 벌였다. 경찰은 리나테 공항에 도착하기 전 버스를 가로막는 데 성공했지만, 더 위험천만한 상황이 남아있었다. 시가 학생들이 탄 버스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러자 경찰은 재빨리 버스 뒷문을 열고 유리창을 깨 학생들을 극적으로 탈출시켰다. 하마터면 50여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뻔한 순간이었다. 프란체스코 그레코 밀라노 검사는 “학생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시는 체포된 뒤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의) 죽음을 멈춰라”며 “나는 대학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전했다. 극우 성향의 연립정부가 집권한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선 입항을 거부하는 등 강경한 반난민 정책을 펴고 있다.
50명이 사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테러는 일부 유럽 국가들의 외교 갈등의 씨앗이 됐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오는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테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5일 테러 이후 선거 유세장에서 호주 국적의 피의자 브렌턴 태런트가 테러 장면을 촬영한 영상 편집본을 틀면서 “서방국가에 ‘이슬람 혐오(Islamophobia)’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직접 듣고 해명을 받아내기 위해 윈스턴 피터스 외무장관 겸 부총리를 터키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정부는 호주 주재 터키대사를 초치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매우 모욕적인 처사”라며 “터키 정부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외교적)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뉴질랜드 정부는 돌격용 자동 소총과 반자동 소총 판매 금지를 골자로 하는 총기 규제 강화 정책을 21일 발표했다. 아던 총리는 “이번 테러에 사용된 모든 반자동 무기는 뉴질랜드에서 금지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정책은 21일 오후 3시부터 뉴질랜드 전역에 적용됐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