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대북 공조 균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정부는 한·미 간 대북 인식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면서 긴밀한 공조를 통해 입장차를 조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1일 국회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동맹이라고 해서 이견이 없다고는 말씀 안 드리겠다. 분명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에 공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북 경제 협력을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겠다는 우리 정부 구상이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 기조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강 장관은 한·미 공조에 문제가 있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듭된 주장에 “기우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외견상 한·미 소통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한·미 외교 당국은 1주일 간격으로 대면 협의를 해왔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열렸고, 14일에는 워킹그룹 실무회의가 진행됐다. 외교부 북미국장은 19일 미국을 방문해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일정을 조율했다. 외교부는 이달 중 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소통 결과 드러나는 양국 정부의 대북 인식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중재역을 자임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질문에 “남북 관계 진전은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답했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국무부의 이런 발언은 남북 관계 속도조절을 주문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한국 정부가 북한이 아닌 미국을 움직이려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며 “설득 대상을 제대로 짚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워킹그룹 회의에서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문제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워킹그룹 회의에 참석한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은 전날 한 세미나에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남북 경협에 박차를 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통일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이 낸 방북 신청을 이번에도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방한 중인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북 강경 입장을 전달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분명한 오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한·미 간 비핵화 방식에 이견이 많다는 평가에 대해선 “지금 시점에서 그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중국 베이징을 거쳐 지난 1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전 의전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러시아와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장문의 정론을 통해 “굶어 죽고 얼어 죽을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이 민족자존”이라며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강의한 정신’을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