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간 2019 메이저리그 개막시리즈가 열린 도쿄돔. 8회말 오클랜드의 공격이 시작되기에 앞서 시애틀의 우익수 스즈키 이치로(46)가 모자를 들어올리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시애틀 덕아웃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열한 동료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악수를 나눴다. 이번 시즌 앞두고 시애틀에 입단한 일본인 후배 투수 기쿠치 유세이(28)는 이치로와 포옹한 뒤 눈물을 흘렸다. 4만6000여명의 관중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세기의 타격천재 이치로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이치로가 이날 경기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치로는 이미 경기 전 구단 측에 이런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치로는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시애틀 회장의 특별 보좌로 일했다가 올 시즌 앞두고 선수로 복귀한 뒤 이번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출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치로는 이날 9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이번 도쿄돔 시리즈 2연전에서 5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해야 했다.
사실 이번 시리즈가 이치로의 은퇴무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았다. 메이저리그는 로스터 숫자를 기존 25명에서 일본 원정을 떠나는 두 구단을 배려해 일시적으로 28명으로 늘렸다. 미국으로 돌아와 1군 선수를 25명으로 다시 운용하는 시점에서 이치로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고 메이저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치로는 이 같은 예상을 뒤엎기 위해 시범경기에 앞서 체지방률을 대폭 낮추고몸에 익은 타격폼을 바꾸는 등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천재의 운도 여기까지였다. 도쿄돔 시리즈를 통해 메이저리그 후배들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치로는 고국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예로운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치로는 현재의 타격 부진과는 별개로 이미 메이저리그에 한획을 그은 전설이다. 이치로는 미국 진출 첫해(2001년)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본 타격왕 출신이긴 하지만 동양인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처음으로 깼다.
이치로는 데뷔 해에 신인상과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를 휩쓸었고 10년 연속 200안타를 돌파했다. 2004년에는 262안타로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도 세웠다. 메이저리그 18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11, 3089안타를 기록했으며 일본프로야구까지 포함할 경우 28년간 4367개의 안타를 날려 ‘세계안타왕’ 타이틀을 보유했다. 이런 불멸의 성적으로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예정돼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