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비용만 한 달 100만원… 아이도 힘들어 보호자 안절부절
의료진, 환자 집 찾아 치료·상담… 물리치료사 재활치료 큰 힘이 돼
거리 등 안맞아 탈락한 경우 많아… 어린이공공진료센터 모두 동참을
두 살배기 본재(경기도 김포)는 태어날 때 입은 뇌손상으로 온 몸이 마비돼 하루 종일 누워만 지낸다. 침상 주변은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의료기기와 각종 약으로 가득하다. 본재의 목에 끼워진 케뉼라(기관절개 관)에는 홈밴트라 불리는 가정용 인공호흡기가 연결돼 있다. 스스로 호흡이 힘든 본재는 그걸 통해 숨을 쉰다. 영양식은 배에 뚫린 구멍(위루관)으로 공급받는다. 머리 맡에는 가래와 침을 뽑아내는 석션기가 설치돼 있다. 산소포화도와 심장박동 측정기는 ‘생명 신호등’과도 같다. 몸 속 산소 농도가 일정 수치 아래로 떨어지거나 심박동이 빨라지면 경고음을 낸다.
엄마 홍수현(가명·40)씨는 본재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 수시로 아이의 코와 입, 목 안에 고인 가래를 빼주고 욕창 등 피부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뒤집어 줘야 한다. 어쩌다 케뉼라가 빠지기라도 하면 호흡곤란으로 위급 상황에 처해 밤낮 없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본재는 2017년 3월 30일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자궁파열로 제왕절개를 통해 예정보다 일찍(임신 29주) 세상에 나왔다.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2~3분간 심장이 멈췄고 응급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났다. 잠깐 사이 뇌손상이 왔고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변’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신생아집중치료를 3개월여 더 받고 7월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돌봄은 온전히 엄마 몫이 됐다. 우유 대리점 일을 하는 남편은 주말에야 겨우 짬을 낼 수 있다. 고생하는 딸을 안쓰러워한 친정 엄마가 한 달에 두 세번 와서 도와줄 때를 빼면 외출은 꿈도 못 꾼다.
본재가 퇴원할 때 홍씨는 석션하는 법, 심폐소생술, 의료기기 작동 및 소모품 교체법 등을 2주간 교육받았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걸 가족이 떠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半)의사, 반(半)간호사’가 돼야 했다. 홍씨는 “집에 온 뒤 아이가 어떻게 될까봐 처음 4~5개월간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래도 매일이 가시방석이다. 아이에게 열이 나거나 감기 증상이라도 있으면 좌불안석일 때가 많다. 응급상황이 닥치거나 혼자 대처가 힘들면 먼 길을 달려 서울대병원까지 가야 안심이 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본재 가족은 올해 1월 김포로 이사오기 전까지 인천에 살았다.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인천에서 서울까지 왕복 26만원을 주고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했다. 한 달 5~6차례 이용에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어쩔 땐 왕복 8만원에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그 역시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았다. 홍씨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이를 데리고 한번 움직이려면 휴대용 인공호흡기와 석션기를 들고 다녀야 한다.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늘 아팠다”고 했다.
그러다 정부가 올해 1월 15일부터 시범 도입한 ‘중증 소아 재택(在宅)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면서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힘겹게 병원을 오가지 않더라도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필요한 의료 서비스와 상담을 해 주는 덕분이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대병원 통합케어센터 김민선 교수와 원미현 간호사가 본재의 집을 찾았다. 원 간호사는 지난달 말 이미 한차례 방문했었고 이날 김 교수는 처음 왕진을 왔다.
김 교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본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폈다. 우선 뇌손상에 의한 강직으로 눈이 잘 감겨지지 않아 안구 건조증이 심했다. 눈 충혈과 눈물 흘림을 방지하기 위해 인공눈물과 안약을 수시로 넣어주라는 주문이 엄마에게 내려졌다.
아래쪽에 치아 4개가 나기 시작하면서 치아 관리도 필요했다. 김 교수는 “이가 나면 가려우니 저불소 치약과 부드러운 실리콘 칫솔을 사서 계속 닦아줘야 썩지 않는다”고 했다. 건조해진 피부 보습을 위해 물에 오일을 풀어 목욕을 시키도록 당부했다. 두상이 자꾸 삐뚤어지지 않도록 자세를 수시로 바꾸고 침상을 세워 앉아있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손에 딸랑이 같은 걸 쥐어주면 자극이 돼서 재활에 도움되고 천장에는 모빌을 달아 눈 자극을 많이 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원 간호사의 보살핌과 엄마와의 상담은 약 1시간 30분간 이어졌다. 김 교수는 “전반적으로 병원에 있을 때 보다 본재의 움직임과 의사 표현이 많아진 것 같다”고 평했다. 홍씨도 “집에 와서 아이도 편안해 하는 것 같다. 집에 온 걸 아는 모양”이라며 웃어 보였다.
본재에 대한 재택 의료는 의료진 이동에 걸린 왕복 2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 30분간 진행됐다. 김 교수는 집을 떠나며 “이달 말 물리치료사가 방문해 본재의 재활 치료와 교육을 시작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홍씨는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와서 아이 상태를 봐 주고 궁금한 것도 풀어주니 정말 안심이 된다”면서 “가장 힘이 되는 건 재활 치료”라고 했다.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나 사설 재활센터를 이용하려면 비용이 비쌀 뿐 아니라 6개월~1년을 기다려야 기회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홍씨는 “본재를 봐 주던 물리치료사가 직접 와서 경직된 몸을 풀어주고 재활 방법도 가르쳐 주는 걸로 알고 있다. 1년에 18번이나 혜택받을 수 있는 점이 큰 위안”이라며 기뻐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처음 시작한 중증 소아 재택의료 시범사업에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서울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이 참여하고 있다. 건강보험(본인 부담 5%)이 지원한다.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져 만 18세 이하 중증 환아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의료진의 이동 거리를 감안해 시범기관에서 반경 30㎞ 이내에 살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거동이 불편한 중증 소아 환자는 퇴원 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웠다. 이런 ‘병원 밖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환아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게 사업 취지다. 서울대병원은 3개월 만에 29명의 환아가 재택의료 대상을 신청했고 11명이 대기 리스트에 올라 있다. 대부분 허혈성 뇌병변, 퇴행성 뇌질환, 각종 신경질환, 뇌종양 후유증, 근육병 등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이다.
김민선 교수는 “나이나 거리 기준에 못미쳐 대상에서 탈락한 경우도 많아 안타깝다”면서도 “도시의 경우 왕복 2시간 거리에 있어야 비슷한 권역의 아이들 3~4명을 하루에 찾아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칠곡경북대병원도 20여명이 등록돼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 병원 김여향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방의 경우 도시 만큼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향후 보다 많은 환아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선 30㎞ 거리 제한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증 환아 가정에서 24시간 간병과 돌봄의 짐을 오롯이 떠안고 있는 가족에 대한 휴식 지원도 향후 재택의료 서비스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아·청소년 재택의료가 활성화돼 있는 일본의 경우 2016년부터 간병 가족 단기 휴식 서비스 제공 기관인 ‘단풍의 집’을 운영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선 18세 이하 중증 환아에게 24시간 의료·간호 서비스를 제공해 가족들이 한 해 3회, 한번에 최대 20일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김민선 교수는 “국내에선 이런 별도의 시설이 없는 만큼, 일단 병원 내에서 성인들에게만 시행되는 ‘간호사 간병 서비스’를 중증 환아에게 확대 시행하고 아이들이 퇴원한 뒤 집에서도 간호 간병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당장 건강보험 지원이 어렵다면 병원 자체 후원금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재택의료가 필요한 만 18세 이하 중증 소아 환자 규모는 3000~5000명선으로 추산된다. 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이 주어지려면 전국의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7곳(강원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전북대병원 등)은 모두 사업에 참여토록 하고 42개 상급종합병원으로 점차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포=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