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음주가 중독으로 이어져
19세 이상 여성의 월간 음주율 2005년부터 꾸준하게 증가… 2017년 처음으로 50% 넘어서
男보다 술 약해 건강 폐해 심각, 알코올 중독에 노출 위험도 높아
비난보다는 도움의 손길 건네야
서른한 살 여성 이모씨는 2년째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가 처음 술을 접하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갑작스러운 전학으로 스트레스를 받자 이를 풀려고 술을 입에 댔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문제적 음주’가 시작됐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팩소주를 들이키곤 했는데, 기분이 둥둥 뜬 것 같이 느껴지더니 우울함이 가셨다. 그 뒤로 종종 하루 일과가 끝나면 혼자 술을 마시다 잠들고, 점점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잦은 음주로 수업에 빠지거나 지각하는 등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겼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정도로 우수했던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다.
음주 문제는 직장생활에서도 이어졌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음주를 멈출 수 없었고 손떨림, 음악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환청이 나타났다. 술을 사러 밖으로 나가면 뒤에서 누군가 쫓아와 칼로 찌를 것 같다거나 건물 위에서 누가 벽돌을 던져 자신을 죽일 것 같다는 망상을 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어머니는 딸의 음주 문제를 자책하며 극단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알코올 전문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씨처럼 음주 문제로 병원을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에 따르면 여성들의 알코올 중독 입원 문의전화 상담이 지난해 902건으로 집계돼 전년(640건)보다 40.9% 증가했다.
여성 음주율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7년 국민건강영양 조사에 의하면 19세 이상 여성의 월간 음주율(최근 1년간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한 비율)은 2005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17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여성의 월간 폭음률(최근 1년간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 7잔 이상, 여성 5잔 이상 음주한 비율)도 25%나 됐다. 특히 20대의 월간 폭음률은 45.9%, 30대는 26%로 20, 30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이 다른 연령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가와 저도주, 과일주 등 여성 기호에 맞춘 주류 시장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여성 음주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사회 현상과 맞물려 여성들의 입원 문의가 증가한다는 것은 여성 음주가 그만큼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제는 신체적 차이로 여성이 남성보다 술에 취약해 음주로 인한 건강 폐해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은데다 체지방이 많은 반면 체내 수분은 적어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진다”며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빨리 취하고 알코올 중독에 노출될 위험도 더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성 알코올 중독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5년마다 실시되는 복지부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의하면 2016년 기준 여성 알코올 사용장애(남용 및 의존증) 1년 유병률은 6.4%(약 40만9000명)로 추산됐다. 특히 18~39세 여성의 유병률은 2001년 6.2%, 2006년 7.3%, 2011년 7.7%, 2016년 9.7%로 계속 높아졌다. 2001년에서 2016년 사이 유병률이 증가한 연령대는 전체에서 18~29세(4.8%→6.9%)와 30대(1.4%→2.8%)뿐이었다.
사회활동으로 음주가 잦은 남성과 달리 여성은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서적 문제를 술로 풀다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김 원장은 “특히 중년 여성 중에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혹은 자식을 출가시킨 뒤 상실감을 해소하려고 부엌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는 이른바 ‘키친 드렁커(kitchen drunker)’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 알코올 중독자는 우울과 불안증, 식이장애, 성격 문제 등을 동반하고 있어 여성 심리를 고려한 전문 치료가 필요하다. 단순히 술을 안 마시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게 된 원인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습관적, 성격적 변화를 위한 훈련이 포함된 여성 특화 치료가 뒷받침돼야 한다.
알코올 남용을 넘어 의존증 단계는 뇌가 술에 대한 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술 마시는 양이나 횟수만 갖고 진단되진 않는다. 술을 충동적으로 마시며 양이 증가하는 ‘내성’과 술을 안 마시면 손떨림이 있거나 짜증, 불안, 식은땀, 간질·발작·환각 등 ‘금단’ 증상을 보여야 의존 단계로 볼 수 있다.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이미 의존성이 생겼다면 스스로 술을 끊기는 매우 힘든 만큼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알코올 중독은 남성보다 병의 진행도 빠르고 치료 경과도 좋지 않아 중독 증상이 발견되면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음주 문제가 발생해도 사회적 편견과 비난으로 인해 이를 숨기거나 방치하기 십상이어서 치료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주변에 음주 문제를 겪는 여성이 있다면 비난보다 도움의 손길을 건네 제대로 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음주 문제가 있는 20, 30대 여성은 결혼과 임신 시 유산이나 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임신하더라도 ‘태아알코올증후군’(태아의 신체 기형과 정신 장애) 발생 위험이 높다.
김 원장은 “습관성 여성 음주자의 경우 신생아 1000명당 4~7명꼴로 태아알코올증후군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만약 습관성 음주 또는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전문치료를 받고 난 뒤 임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중치료로 금주에 성공했다면 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해국 교수는 “금주 후 알코올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면서 “저녁시간마다 뭔가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 가족이 다함께 자원봉사를 다니는 것도 좋다.
▒ 죽음 부르는 급성 알코올중독… 혈중 농도 0.4% 넘으면 위험
중추 신경·호흡 중추 마비 발생… 구토하다 질식사할 위험도 커져
최근 중국에서 13세 소년이 가족 식사 중 아버지에게 술을 배우다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간 사건이 화제가 됐다. 급성 알코올 중독은 단시간에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술을 마셔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상승하면서 중추 신경과 호흡 중추가 마비돼 발생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성별이나 몸무게, 음주량과 속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는 혈액 100㎖에 알코올 0.1g이 포함됐음을 의미한다. 보통 0.1%(주종별로 각 표준잔 기준 약 7잔)부터 평행 감각이 무뎌지면서 집중력, 판단력이 떨어진다. 0.2%(약 10잔)일 때는 언어 및 운동 조절 능력이 저하된다. 0.3%(약 14잔)를 넘기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인사불성이 되며 0.4%(약 20잔) 이상일 경우 호흡이 곤란해지고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겨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알코올에 의한 사망뿐 아니라 술에 취해 잠들거나 의식이 약한 상태에서 구토를 하다 기도에 음식물이 걸려 질식사할 위험도 크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개인별 분해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는 만큼 알코올에 취약한 여성과 청소년은 급성 알코올 중독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은 선천적으로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고, 청소년은 알코올 분해를 담당하는 간의 크기가 작아 분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의 경우 자신의 주량을 모른채 호기심과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과 폭음을 하기 쉬운데, 이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해 청소년들이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다사랑중앙병원 내과 전용준 원장은 1일 “급성 알코올 중독은 만취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방치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면서 “만약 술 마신 뒤 취해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의식없이 호흡이 늦어진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으로 옮겨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