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권이 브렉시트 해법을 찾지 못하고 혼란을 이어가면서 국민들의 피로도와 경제적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은 2일 “영국 국민이 느끼는 브렉시트 피로(Brexit fatigue)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하원에서 브렉시트 대안에 대한 의향투표를 실시했지만 모두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 나자 국민들은 “브렉시트, 도대체 이제 다음 단계는 뭐냐”며 체념과 분노 등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피로감뿐만 아니다. 영국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기업 손실 역시 천문학적 규모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매주 약 6억 파운드(8900억원)씩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영국 GDP의 2.5%가 사라진 셈이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예상하고 주당 8억 파운드(약 1조1300억원)의 손해를 본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불확실성이 영국에 대한 투자를 억눌렀고, 최근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영국이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할 경우 영국 경제의 충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파운드화 가치가 17% 급락하고 국제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영국의 GDP는 5.5%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역시 노딜 브렉시트가 될 경우 영국의 소득수준과 성장 전망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가 재정까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영국 탈출도 급박해지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뉴파이낸셜은 이날 ‘브렉시트에 대한 은행·금융산업의 대응방식 분석’ 보고서를 통해 금융기업들의 탈출 실태를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향을 받은 금융기관 269곳 중 250곳이 EU에 거점을 새로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210곳 이상이 EU에 새로운 법인 설립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런던에 있던 금융기업들이 재정착한 도시로는 더블린(30%), 룩셈부르크(18%), 파리·프랑크푸르트(이상 12%), 암스테르담(10%), 마드리드(4%), 브뤼셀(3%), 스톡홀름(1%) 순이었다.
또 조사대상 금융기관 중 은행들은 8000억 파운드(약 1200조원)의 자산을 EU로 옮겼거나 옮기는 과정이며, 자산운용사들 역시 이미 650억 파운드(약 97조원)의 펀드를 이전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험사들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백억 파운드(수십조원)의 자산을 이전하거나 이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뉴파이낸셜은 “이번에 소개된 금융권 실태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집계됐다. 브렉시트로 인한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크다”면서 “아직 계획이 노출되지 않은 기업도 있고, 사업전략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하원은 전날 4개의 브렉시트 대안을 놓고 2차 의향투표를 실시했지만 모두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하원은 3일 3차 의향투표를 다시 가진다. 2차 의향투표에서 유력 대안으로 거론된 관세동맹과 국민투표의 찬반 표차는 지난달 27일 1차 의향투표 때보다 각각 8표차, 27표차로 좁혀진 만큼 3차 의향투표에서는 과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영국 정부는 하원이 2차 의향투표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자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4차 승인투표를 시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하원의 잇따른 대안 도출 실패로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