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살고 있는 직장인 두모(61)씨는 최근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시트형 세탁세제를 빨랫감과 함께 넣는데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세탁기에 휴지를 넣으면 어떻게 해”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가정 세탁세제가 바뀌고 있다. 분말형에서 액체형으로, 최근에는 액체형에서 시트·캡슐형으로 변하고 있다. 몇 년 뒤 어떤 형태의 세탁세제가 집 세탁기 옆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두씨는 7일 “평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편이 헷갈릴 정도로 세탁세제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3300억원대 규모로 성장한 가정 세탁세제 변천사를 살펴봤다.
세탁세제는 언제 처음 출시됐을까. 정답은 1966년이다. 이 해 LG생활건강과 애경산업이 각각 ‘하이타이’와 ‘크린엎’을 선보였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세탁비누를 이용해 빨랫감을 세탁하는데 익숙했고 지금처럼 집집마다 세탁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제품을 출시한 지 1달이 채 안 돼 생산을 중단해야 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신문과 라디오, TV 등을 통한 광고와 함께 ‘생각보다 빨래가 잘 되더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하이타이와 크린엎을 이용해 세탁하기 시작했고 집들이 인기 선물로도 자리를 잡았다. 하이타이의 경우 출시 30년 만에 매출 1조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2년 드럼세탁기가 출시되며 상황이 변했다. ‘빨래를 했는데 빨랫감에 세탁세제가 묻어있다’는 불만이 드럼세탁기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드럼세탁기는 전자동세탁기(통돌이)보다 물을 적게 사용하기 때문에 세탁세제가 충분히 녹지 않은 것이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2005년 피죤을 시작으로 애경산업과 LG생활건강이 분말형 세탁세제의 단점을 극복한 제품을 출시했다”고 말했다. 물에 잘 녹아 세탁세제 잔여물이 남지 않는 액체형 세탁세제의 등장이다. 2009년에는 독일 ‘퍼실’까지 국내로 들어오며 국내외 업계가 세제 시장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다.
지난 2016년에는 업계가 술렁였다. 액체형 세탁세제의 공세에도 줄곧 1등 자리를 지켜온 분말형 세탁세제가 마침내 그 자리를 내준 것이다. 시장조사전문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 해 분말형 세탁세제 시장 및 액체형 세탁시장은 각각 1685억원, 1837억원을 기록했다. 액체형 세탁세제가 출시된 뒤 빠르게 분말형 세탁세제 구매자들을 흡수한 것이다. 이후 업계는 ‘반만쓰는 리큐 진한겔 1/2’ ‘리큐 Z 센서티브’ 등 고농축 액체형 세탁세제 및 프리미엄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관련 시장을 잡는 데 한창이다.
업계는 1~2인 가구가 최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또 한번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세탁력이 뛰어나면서도 가벼운 제품을 찾고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말 1인 가구는 561만8677가구로 전체 가구의 28.6%를 차지했다. LG생활건강은 2017년 프리미엄 세탁세제 ‘피지 시트세제’를 선보였다. 시트 한 장으로 간편하게 빨래를 끝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분말형이나 액체형보다 가벼워 사용의 불편함을 대폭 개선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분리수거가 가능한 종이박스로 포장돼 있어 액체형 세탁세제와 비교해 분리수거 부담도 한층 줄였다”고 덧붙였다.
퍼실은 캡슐형 세탁세제인 ‘퍼실 듀오캡스’를 내놨다. 세탁기에 캡슐 하나만 넣으면 고농축 액체 포뮬러가 세척력을 발휘한다. 캡슐형 세탁세제의 경우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전체 시장의 10~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