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자녀들에 이어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58)씨가 마약(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일상에 파고든 마약 실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마약 유통과 소비가 SNS 등을 통해 손쉽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마약 청정국’ 수식어는 미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효과적인 마약단속을 위한 전문조직 신설, 수사체계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트위터 등 SNS에서 마약거래상과 접촉하는 일은 손쉬웠다. 국민일보가 9일 ‘떨’ ‘아이스’ ‘캔디’ 등 대마나 필로폰, 엑스터시를 뜻하는 은어를 검색하자 관련 판매자들이 손쉽게 파악됐다. 판매상들은 대부분 휴대전화에 대화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텔레그램 메신저나 중국의 위쳇을 이용해 구매자와 접촉했다. 한 판매상은 “필로폰 4g 90만원, 대마 1g 15만원, 몰리(엑스터시 합성마약) 1알 40만원”이라며 입금 즉시 상품을 보내 준다고 했다. 대면 거래 방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판매자는 “낮에는 고속버스화물로 (마약을) 보내고 고속버스 화물을 찾을 수 없는 오후 9시 이후로는 직접 계신 곳으로 가서 던지기해 드린다’고 밝혔다. ‘던지기’는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 두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이다.
국내 마약 시장의 규모는 이미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평가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한국 마약사범은 2015년 1만1916명으로 1만명 대를 넘어섰고, 이후에는 1만2000~4000명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SNS를 통해 은밀히 유통되는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마약 밀수입 압수량은 298.3㎏으로 전년(35.2㎏) 대비 8.5배가량 급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마약류 범죄자가 드러난 마약사범보다 수십배는 많다고 본다. 경찰 관계자는 “SNS 무인택배 등 거래방법이 다양해져 첩보를 입수하지 않는 한 검거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마약과의 전면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무인택배나 인터넷을 이용해 마약을 구입하고 마약자금 세탁 방법도 워낙 정교해져 대응 방법도 변해야 한다”며 “단순히 투약자를 검거해 실적을 올리려는 수사 행태에서 벗어나 마약을 제조 공급하는 윗선을 검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연방 행정기관 산하에 마약범죄에 특화된 마약수사국(DEA)을 두고 전문 인력이 마약류 범죄에 대한 수사·감시·단속을 꾸준히 한다”며 “이를 모델로 검찰과 경찰이 협력해 하나의 수사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진화하는 마약범죄에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