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69) 이스라엘 총리가 9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5선 도전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인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유대인 민족주의와 안보 이슈를 활용한 보수층 결집에 총력을 다해 왔다. 그가 연임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악화 등 중동 정세가 한층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중도정당연합인 청백당은 총선에서 전체 120석 중 35석(개표율 97% 기준)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이 10일 보도했다. 유대교 초정통파 정당인 샤스당과 유대교토라연합(UTJ)은 8석, 좌파 성향인 하다시와 노동당은 6석을 각각 얻을 것으로 예측된다. 리쿠드당과 우파 정당은 총 65석을 확보해 중도좌파 진영(55석)보다 10석 앞설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5연임은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은 총선에서 최종 개표 결과가 발표되면 대통령이 정당 대표들과 논의한 뒤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연정구성권을 부여한다. 총리 후보는 42일 내에 연정을 출범시켜야 한다. 리쿠드당을 포함한 우파 정당의 총 의석수가 절반을 넘을 확률이 높은 만큼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 네타냐후 현 총리를 연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간 하르츠는 “네타냐후가 다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확실한 길(clear path)’을 닦았다”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개표가 진행되는 도중 “엄청난 승리를 거둔 밤”이라며 “이스라엘이 나를 5번이나 믿어줬다는 점에 매우 감동했다”고 밝혔다. 또 “우파 정부를 만들 예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다”며 “하지만 정치 성향이나 유대인 여부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이스라엘 국민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쿠드당과 초박빙 접전을 벌인 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도 “우리가 이번 총선의 승자”라고 발표했다.
13년 동안 총리를 지낸 네타냐후가 이번에도 연임에 성공하면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1996~99년 제13대 총리로 일했고 2009년 다시 총리직에 오른 뒤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중동의 스트롱맨(strongman)’으로 불리는 보수 우파 성향의 네타냐후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다.
유대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연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네타냐후는 총선 직전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병합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웨스트뱅크(West Bank)’라고도 불리는 서안지구는 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한 뒤 정착촌을 건설한 곳으로 이·팔 분쟁지역 중 하나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팔 분쟁에 대한 강경책을 펼치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선을 앞둔 지난달 21일 갑자기 트위터를 통해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전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선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토 주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하기도 했다. 다만 양국 정상의 주장은 국제법상으로 효력이 없다.
이번 총선 결과로 네타냐후 총리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당분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는 수년간 유력 사업가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언론 조작을 일삼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 검찰은 지난달 1일 네타냐후를 부정부패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네타냐후는 총선 기간 자신의 부정부패 의혹을 덮기 위해 안보 이슈를 부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