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한 가운데 북한은 ‘경제발전 총력노선’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으로 요약되는 중재안을 갖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2기 체제’가 출범하는 11일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9일)와 중앙위 전원회의(10일)를 잇따라 개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치국 회의에서 “긴장된 정세에 대처하여 자력갱생의 정신을 높이 발휘해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철저히 관철하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긴장된 정세’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미 대화가 중단된 상황을, ‘새 전략적 노선’은 지난해 4월 채택한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의미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치국은 전원회의 소집을 결정하면서 “새로운 투쟁 방향과 방도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당분간 제재 완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협상 장기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 중심 국가인 북한은 당에서 주요 정책 결정을 하고, 이를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추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김 위원장의 육성 메시지는 1차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향한 것이지만 1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경제 발전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건 비핵화 협상장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한·미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치고, 회담 결과는 다시 김 위원장의 대미 전략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신호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거듭 강조한 건 미국의 제재 압박에도 단계적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괄타결식 빅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는 입장차가 여전히 큰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일단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 선에서 입장을 표명했다”며 “보다 명확한 메시지는 한·미 정상회담 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상원 세출위원회 국무·외교활동소위에 출석해 ‘북한과의 협상을 지속하는 동안에도 최대 경제 압박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북 외교의 목표를 묻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재래식 무기의 위험 감소’ ‘북한 주민의 더 밝은 미래’라는 3대 원칙을 제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을 ‘독재자(tyrant)’로 지칭하기도 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발언은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의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며 나온 것이라 지나치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정부는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두 번의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거둠으로써 협상 동력을 살려나가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 공조를 굳건히 다지고, 그 토대 위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비핵화 방법론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