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길이 원칙 (Arm’s length principle)’. 문화예술계 종사자라면 이 용어를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1946년 창설된 영국 예술위원회가 채택한 이 원칙은 한 마디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팔에 닿는 거리만큼 두어 지원은 하지만, 정치와 관료행정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도록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술지원정책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여겨지던 이 원칙은 시간이 흐르면서 최초의 주창자인 영국에서조차도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예술위원회를 운영하고 지원정책을 꾸리면서 드러나는 여러 한계 상황은 ‘과연 예술이 정치로부터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는가’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앙은 물론 각 지방자치 정부들이 다양한 문화재단과 기관들을 설립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일부 재단들은 끊임없이 정부의 간섭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적 종속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기관장들을 ‘코드 인사’나 ‘낙하산 인사’를 통해 그 자리를 앉히는 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관장은 상위 기관이나 임명권자의 의견과 별개로 엄중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재단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요구를 견제하거나 중재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카운터 파트너인 문화예술인들과 문화예술 생태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요구된다. 하지만 실상 이런 이상적인 대표는 국내에서 한 손으로 꼽고도 손가락이 남을 만큼 드물다.
지난달 벌어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 발표 지연 사태는 1차적으로는 기본 소양이 결여된 김종휘 대표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비롯된 ‘인재’였다. ‘2019년 예술지원사업’ 심사가 내부 문제로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공연기획사, 극단, 공연장들이 차례로 예정된 사업을 제때 실행되지 못하고 있고 이로써 문화예술 생태계 전체가 뒤흔들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재단 측은 대표 권한으로 실시한 조직 개편과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심의 건수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사태의 근원을 파고들면 상위 기관인 서울시가 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만성인력부족으로 시달리던 재단은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예술지원 담당인력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했다. 서울시가 재단의 제한된 인력을 배려하지 않고 청년지원사업과 생활문화사업을 무리하게 하달했고, 서울문화재단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정작 재단의 근간사업인 예술지원사업은 감당 못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3월의 사태는 단순히 대표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역량 미달의 대표를 임명한 과실을 비롯해 ‘팔 길이 원칙’을 망각한 서울시의 무리한 사업 하달이 재단의 정체성과 예술의 자율성을 좀먹은 결과다. 이런 정책적 간섭이 당연시되는 풍토가 지속되는 한, 정치로부터 예술의 독립성 보장은 요원하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