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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이번엔 화폐단위 변경 깜짝쇼?



생산과 투자, 고용 등 실물 경제지표가 악화하는 가운데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에 변경을 주지 않으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5만원(50,000원)을 50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원화의 화폐단위가 과도하게 크다는 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 회계 기장 처리 간소화, 화폐 위상 제고 등 이점이 많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는 다른 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 퇴장해 있던 자금이 시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어두운’ 성격의 지하자금이 양성화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통해 쌓아 놓은 유보금도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군불을 때는 곳이 정치권, 구체적으로 여당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달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질의를 통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이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다음 달 토론회를 열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참이다. 여권이 화폐단위 변경을 내수 부양을 위한 ‘깜짝 카드’로 쓰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필요할 때는 됐다고 본다”면서도 정치권에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은에서는 “준비는 다 마친 상태”라며 “정치권에 달려 있다”고 한다. 여권과 한은이 일정한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전직 한은 고위간부는 “여권은 집권 초부터 내수 부양 카드로 여겼던 것 같다”면서 “2004년 화폐단위 변경을 강력히 추진한 박승 전 한은 총재가 여권과 가까운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화폐단위 변경은 또 하나의 정책 실험으로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실물가치는 그대로라도 단위가 크게 낮아지는 데 따른 심리적 착시 등으로 부동산 투기 심화, 물가상승 가능성이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비용은 명확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라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회적 적응 비용과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고려하면 편익보다는 비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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