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정부가 세계 수소차 시장 1위를 목표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국제시류에 맞지 않는 수소차 집중육성 계획으로 국내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발표안에는 한국이 2030년까지 수소차와 연료전지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수소차 생산량도 올해 4000대, 2022년 8만1000대, 2030년 180만대로 늘리고, 이후 수백만 대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현재 14곳의 수소충전소를 2040년가지 1200개로 늘리기로 했다. 이번 로드맵은 석탄과 핵 등 환경문제가 있는 에너지원을 수소라는 고효율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전환한다는 점,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 등에서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수소차는 전기차와 달리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시장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또 수소차 인프라 마련, 관련 기술개발 등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는 점이다. 반면 전기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특히 한국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일류기업으로 입지를 다진 상황이다. 따라서 업계와 학계는 정부가 수소차에 올인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으로 전기차 투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학계는 정부가 전기차보다 수소차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경쟁력을 가진 한국 전기차 업계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중국 등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학계 전문가는 “수소는 앞으로 20년은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시장성이 없다는 의미) 사업이다. 생산부터 저장까지 연구개발도 완료되지 않았다. 전기차는 매년 생산 판매가 두 배씩 늘어나며 상용화됐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처럼 당장 수소(수소차)를 하면 돈이 된다는 듯한 침소봉대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수소경제가 바람직한 방향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산업계는 전기차로 가고 있는데 정부만 수소경제로 가겠다는 것은 엇박자다. 전기차 관련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적 무관심으로 글로벌 시장경쟁에서 뒤처질까 우려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일이 단단히 꼬였다. 정부가 초기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한다고 주장하더니 갑자기 수소차로 틀었다. 세계적 트렌드가 전기차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상황에서 연구개발도 안된 수소차를 한국만 단기간에 상용화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수소차 충전소 1곳당 30억원이 든다. 앞으로 수소차 충전소만 300~1000개를 정부가 깔겠다고 하는데, 비용이 어디서 나오느냐”며 “국내 전기차 충전기 대다수가 저속충전이라 모두 급속으로 교체해야하는 상황이다. 예산분배 효율성이 너무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시장은 이미 전기차다. 한해 자동차 업계 연구개발비 약 120조원 중 수소차 비중은 약 2조원이 불과하다. 수소타령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학계와 업계 모두 전기차에 집중하고 남는 역량을 수소차에 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부품업계도 수소차 관련 설비 연구개발 투자에 주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은 완성차 업체가 부품 업체로부터 관련 부품을 받아 조립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수소차와 전기차 사이를 왔다갔다하다보니 부품업체들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부품사는 한 번 투자로 관련 부품을 생산하면 꾸준히 이를 유지해야 한다. 부품사들은 수소차에 투자했다가 정부가 원하는 수소경제가 계획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수소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한국을 테스트 베드(Test-bed)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수소에 투자하더라도 가격과 기술 등에서 글로벌 트렌드인 전기차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중권 쿠키뉴스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