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두 곳에 한국 작품 상설 전시장 만들 것”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관 내 관장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촬영에 임하고 있다. 윤 관장은 박근혜정부에서 외국인 관장을 채용했던 것과 관련, “미술이 축구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한국 미술을 모르면서 교육과 전시를 하고 국제무대까지 끌고 가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았겠냐”고 답했다. 권현구 기자


윤범모(68)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천관 2개관에 한국 근·현대미술의 교과서 같은 상설 전시장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언제 와도 우리 미술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외됐던 마이너 장르의 전시를 열어 균형을 추구하겠다”며 “판화, 공예, 민중미술은 물론 민화 전시까지 못할 게 뭐 있겠느냐”고 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장실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다. 지난 2월 1일 관장직에 임명된 이후 윤 관장이 일간지를 통해 미술관 운영 구상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감색 정장에 연두색 넥타이로 봄 기분을 낸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야외로 나가자 감색 베레모를 썼다. 야인 시절 ‘미술판 훈수꾼 윤범모’의 트레이드마크는 야구 모자였다. 양복을 입어도 모자는 야구 모자였다. 바뀐 모자가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관장에 임명된 지 두 달 보름이 흘렀다.

“장기나 바둑도 훈수 두는 사람이 판을 더 잘 들여다보지 않나. 훈수는 잘했는데, 직접 경기자가 돼 무대에 올라와 보니 쉽지 않은 것 같다. 직제와 예산 등 모든 것이 중앙정부의 큰 그림하에서 돌아가니….”

-지난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 추진 중단 방침을 밝혔는데.

“법인화 목표 때문에 2013년 서울관을 개관하고도 학예직 등 직원들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전문임기제로 채용했다. 그들의 임기 만료가 연말에 도래하는 만큼, 뭔가 큰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저는 100% 다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술관 현안임에도 칼자루를 제가 쥐고 있지 않다. 행안부와 기재부, 국회까지 통과해야 하는 산 넘어 산의 문제다. 금년 말로 임기가 끝나는 학예사한테 내년, 내후년 전시 기획안을 제출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전시 방향에 대한 구상은.

“장르와 시대, 작품 경향 등에 있어 균형 감각 있게 다양성을 꾀하도록 하겠다. 근·현대미술뿐 아니라 마이너 장르인 목판화, 공예 전시도 미술관에서 하면 좋지 않겠나. 우리가 목판 문화의 종주국인데도 특화는커녕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또 도자기의 나라로 공예의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도 공예의 현대화와 국제화에 얼마나 관심을 뒀는가. 미술계가 서구 우선주의다 보니 미술사 미술이론 전공자도 다 서양 현대미술 위주다. 당연히 미술관 전시도 서구 편향으로 가는 측면이 있었다.”

윤 관장은 이 대목에서 자신에게 들어온 민원에 대해 얘기했다. “어떤 분이 외국인 몇 사람 모시고 한국 미술을 보여 주려 서울관에 왔는데, 우리나라 작가 전시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소연하더라. 지금의 서울관 전시 구성도 그렇다. 그래서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대표성 있는 소장품을 가지고 한국 미술 상설 전시장을 만들려 한다. 근·현대미술사의 교과서 같은 전시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소장품 300선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관과 과천관 2개관에 상설전시장을 만들어 이를 보여줄 것이다. 내년부터 가능할 것 같다.”

-지난 3월 5일 신임 관장으로서 비전을 발표할 때 남북 미술 교류를 언급했다. 남북 관계가 생각보다 호전되지 않고 있다.

“진척 상황이 어떻게 돼가든 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한다는 방침이다. 미술관 내외의 북한 미술 전문가 10여명이 참여하는 출판·학술팀을 발족시켜 아카이브 작업을 이달 초부터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전시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포함해 북한 미술은 식상할 정도로 많이 소개됐다. 차별화될 수 있을까.

“저는 1992년 예술의전당에서 북한 미술전인 ‘그리운 산하’전을 기획한 적이 있다. 최초의 북한 미술전이었다. 중소기업이 북한으로 물품을 반출했는데, 대금으로 달러가 아니라 미술품이 컨테이너에 실려 왔었다. 그 기업 의뢰를 받아 북한 미술품을 조사했고,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 북한 명산을 그린 풍경화만 뽑아 전시했다. 실향민들이 많이 와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 뒤에 어림짐작으로 100건 이상의 북한 미술 전시가 개최됐다. 한데 이 전시들은 모두 민간 차원에서 반입된 미술품으로 꾸려졌다. 진위와 작품성 등에 있어 신뢰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공식 기관 대 공식 기관의 교류전을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별화된다.”

-‘평양미술기행’(2000년) 책도 냈던데.

“1998년 11월 북한 당국의 공식 초청을 받아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평양미술대학, 만수대창작사, 조선미술박물관 등 보고 싶은 데를 다 봤고 관계자들도 두루두루 만났다. 지하철역 등에 걸어 놓은 대형 벽화인 ‘쪽무늬그림’(타일로 만든 모자이크 벽화)이 신기해 북에서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고 남에서 국제 비즈니스 감각을 가미시켜 협력하면 쪽무늬그림으로 남북 합작 전 세계 외화벌이도 가능하겠다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선명성과 간결성을 특징으로 한다. 동양화도 여백을 주지 않는 ‘조선화’를 만들었다. 분단 이후 미술이 걸어온 발자취가 달라 남북 미술 교류는 분절된 미술사를 복원하는 의미가 있음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이 지난해 2월 누전으로 가동이 중단된 이후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해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면 다시 불 밝힐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술관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올해 중반기쯤 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전문가 의견을 취합하고 여론도 수렴한 뒤 최종안을 만들겠다. 내년 예산안에는 결과가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한국민화센터이사장을 지냈고, 야인 시절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민화를 홀대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미술관을 개방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그런 대전제하에서 못할 게 어디 있느냐. 고구려벽화부터 조선시대 궁중회화, 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색채를 선호한 원색의 민족이다. 색채를 활용한 미술이 더 조명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민화의 내용은 부귀영화, 장수 등 전 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주제다. 국제 경쟁력이 있다. 학예직에서 하자고 하면 적극 밀고 싶다.”

윤 관장은 끝으로 과천관의 어린이미술관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어린이미술관을 별도 부서로 독립시키고, 과천관 둘레길을 조성하며, 놀이 기능을 가미한 조각 작품을 배치해 가족친화형 조각공원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했다.

윤 관장은

미술사학자이면서 미술평론가로, 미술기획자로 광폭 행보를 펼쳐와 ‘르네상스 맨’으로 통한다. 연구 범위도 고구려벽화에서 조선시대 책가도와 민화, 이인성 나혜석 이쾌대 등 근대기 작가론, 한국 현대미술의 자생성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노을 씨, 안녕’ 등 다수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충남 천안 출생으로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김복진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3년간 가천대학교(옛 경원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큐레이터협회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등을 기획했고, 호암갤러리(삼성미술관 리움 전신),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등의 개관과 운영에 참여했다. ‘평양미술기행’ ‘화가 나혜석’ ‘한국미술론’ 등 2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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