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잦아들 것 같았던 ‘노란 조끼’ 시위가 다시 불붙었다. 그동안 불평등과 빈곤 등 사회문제에 아랑곳 않던 부자들이 대성당 복원에 막대한 돈을 쾌척하자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부자들이 세금 절약을 위한 ‘꼼수’로 기부금을 내놓고 생색만 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시민들은 빅토르 위고의 걸작 소설 제목에 빗대 “‘노트르담 드 파리’ 말고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했다.
AFP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시민 2만7900여명이 23차 노란 조끼 시위에 나섰다. 지난 13일 22차 시위 당시 참여자 수(3만1100여명)보다 규모가 줄었지만 수도 파리에서는 도리어 지난주보다 4000명이 늘어난 9000여명이 거리에 나왔다. 이번 시위 역시 시위대가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차량을 불태우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력 시위 양상을 보였다.
대성당 화재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이슈가 됐다. 일부 시민은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위한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잊지 말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나왔다. 이 문구는 작가 올리비에 푸리올이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후 프랑스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돼 왔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갑자기 싸늘해진 건 부자들의 거액 기부 때문이다. 양대 명품 재벌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과 케링그룹, 화장품업체 로레알 등 프랑스 유수 대기업은 화재 직후 1억~2억 유로의 막대한 돈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책임 분담에 미온적인 부자들이 정작 성당 복원에 거액을 내는 건 모순적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여기에 정부가 기업 기부금 액수의 60%가량에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할 것으로 알려지자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이런 예상치 못한 역풍에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시민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사람들은 노트르담 화재를 우리 모두가 감내할 고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 일이 다시 불씨를 뿌렸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세액 공제 논란에 대해 “대성당 복원에 들 수십억 유로 전액을 결국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사회 통합의 기회로 삼으려던 프랑스 정부는 당혹한 기색이다. 진화작업을 진두지휘해 호평을 받았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다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처지에 놓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5년 안에 대성당 복원을 공언한 것을 두고도 국민적 불만은 도외시한 채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성당 화재 때문에 취소했던 노란 조끼 관련 대국민 연설을 오는 25일에 할 예정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