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Caravan·캐러밴)들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최근 멕시코 정부가 캐러밴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면서 불법 이민자들이 멕시코에 머물기 힘들어졌다. 미국 국경도시에서도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불법 이민자들을 불법 억류하는 등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캐러밴의 경유지인 멕시코 치아파스주 마파스테펙에 머무는 이민자들에 대한 원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캐러밴에 음식이나 거처, 일자리를 제공했던 멕시코 지방정부, 교회, 주민들이 일제히 지원을 줄인 탓이다. 트럭 운전자들에겐 허가 없이 이민자들을 태우면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까지 내려졌다. 교역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멕시코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해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멕시코가 캐러밴을 막지 못하면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며 압박 수위를 다시 한번 높였다.
온두라스 출신으로 캐러밴에 합류한 헤오바니 비야누에바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를 지치게 하려는 것이 정부의 전략인 것 같다”고 말했다. 2살 아들과 함께 캐러밴에 합류한 한 온두라스인도 “아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데 줄 게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굶주림을 피해 가까스로 미국 국경을 넘어도 반자동소총과 위장복 등으로 무장한 미국 민병대가 기다리고 있다.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해 설립된 무장민병대 ‘뉴멕시코주 미국헌법애국자연맹(UCP)’은 지난 15일 불법 이민자를 억류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영상 속에는 반자동소총을 소지한 UCP 회원들이 어두운 도로 한가운데서 불법 이민자 200여명을 에워싸고 감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UCP 회원들은 두려움에 떠는 불법 이민자들을 국경수비대 대원들에게 넘겼다. UCP 대변인도 “우리가 국경수비대와 함께 일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지난 두 달 동안 국경수비대를 도와 구금한 불법 이민자가 5600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불법 이민자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미 정부가 민병대의 불법적인 활동을 용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미 연방수사국(FBI)은 UCP 대표 래리 미첼 홉킨스를 총기와 탄약을 소지하고 경관을 사칭한 혐의로 체포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