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르면 23일 전용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대미 협상력 제고를 노린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기간에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를 시찰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방문 후보지로 태평양함대사령부 및 관련 시설과 러시아 최대 규모 수족관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 세계 최정상급 발레·오페라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분관 등을 언급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2일 전했다.
김 위원장의 태평양함대 방문이 성사된다면 미국을 견제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임을 과시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중국을 네 차례나 방문했지만 공개적으로 중국군 시설을 둘러본 적은 없다.
24일 러시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김 위원장은 휴양지 루스키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만찬을 함께한 다음 25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장으로는 극동연방대 캠퍼스가 거론된다. 루스키섬에 위치한 이 대학은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동방경제포럼 등 정상급 행사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김 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대학 내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이 21~22일 이틀 연속 외신에 포착됐다.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발 떨어져 있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가능성은 낮지만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다면 북한 비핵화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장기화를 대비하는 포석으로 북·러 정상회담을 활용한다면 비핵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수행 중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핵화 과정에서 하나의 프로세스”라며 “(러시아 방문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국 입장에서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자발적 핵보유국이었다가 미국의 지원을 받고 핵·미사일을 폐기한 ‘카자흐스탄 모델’의 북한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핵무기 개발 과정이나 지정학적 요건 등 여러 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프로세스 자체보다는 핵 포기 후 어떤 혜택을 주느냐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만나 “북·러 정상회담이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헌 조성은 기자, 누르술탄=강준구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