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태원준] 결혼과 이혼 사이



2017년 등장한 TV 예능프로그램 ‘별거가 별거냐’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하다”를 모토로 내세웠다. 연예인 부부들을 몇 달씩 떨어져 살게 하면서 일상과 감정의 변화를 촬영했다. 별거는 늘 곁에 있어 편하기만 하던 부부가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라고 제작진은 주장한다.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시즌 3까지 나왔다. 그룹 부활의 김태원씨도 출연했는데 “아내가 떠나면… 난 뭐 의미가 없어”처럼 절절한 멘트를 여럿 남겼다.

경단녀 시기를 거쳐 컨설턴트로 복귀한 박시현씨는 지난해 에세이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를 펴냈다. 그는 휴혼(休婚)을 ‘서로 다른 집에 살지만 부부 간 애정을 유지하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라고 정의했다. 경력 단절 후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하자 육아와 살림에 기대치가 높은 남편과 갈등이 생겼다. 결혼 5년차인 2017년 떨어져 살기로 결정했다. 박씨가 월세를 얻고 남편은 부모님과 집을 합쳐 육아에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떨어져 산다고 말한다. 사랑하는데 같이 사는 게 힘들어 집만 분리한 터라 소설가 이외수씨의 졸혼(卒婚)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씨의 부인 전영자씨는 결혼 44년 만인 지난해 말부터 강원도 화천의 이씨 집을 떠나 춘천에 살고 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찾자”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다가 이씨가 원치 않아 졸혼으로 합의했다. 법적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둘 다 민법에 없는 개념인데 휴혼은 재결합에, 졸혼은 독립에 무게를 둔다는 점이 다르다. 이 미묘한 차이가 서구에도 존재한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을 비롯해 미국의 많은 유명인이 떨어져 지내지만 함께 살아가는 ‘LAT(Live Apart Together)’ 결혼생활을 했고, ‘TOM(Termination of Marriage·졸혼)’이 ‘Divorce(이혼)’와 다른 법률용어로 여러 주에 명문화돼 있다. TOM은 건강보험 혜택 등 경제적 이유에서 주로 택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박씨의 휴혼 합의 항목은 ‘이성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등이었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졸혼 상담은 주로 재산 분할에 관한 것이다.

결혼과 이혼 사이에 이처럼 부부 관계의 새로운 장르가 확산되고 있다. 고령화로 결혼기간이 길어질 테니 더 세분화될지도 모르겠다. “혼자 살아갈 용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같이 살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은데, 너무 순진한 생각인 모양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