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파리시민들의 문화 사랑 불길 속 악기 구출로 승화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이 지난 15일 화마가 휩쓸고 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포레의 ‘꿈꾸고 난 뒤’를 연주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간. 위키피디아


이달 초 강원도에 일어난 화재는 많은 피해를 낳았지만 그 와중에 작은 기적을 낳았다. 산불 지역에 다수의 사찰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문화재 피해가 전무했던 것이다. 특히 화마의 한 가운데 있었던 보광사에 있던 문화재인 현왕도는 화재 발생과 거의 동시에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 과거 낙산사나 숭례문 화재에 비하면 문화재청의 대응이 신속해진 것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5일 프랑스 파리 노르트담 대성당 화재를 뉴스로 보면서 대다수는 서울 숭례문 화재를 떠올렸을 것이다. 1160년 건축이 시작된 이 대성당은 처음부터 사랑받던 장소만은 아니었다. 16세기에는 위그노 교도들이 우상숭배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대성당 조각상들을 부수었고, 18세기 프랑스 혁명 중에는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침입해 각종 보물들을 약탈해갔다.

19세기 초 낡은 모습으로 황폐하게 남아있던 노트르담 대 성당이 ‘파리의 심장’으로 각인된 것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1831) 때문이었다. 15세기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싼 프랑스 사회상을 그린 이 소설 출간은 시민들의 관심을 대성당에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부르주아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모금 운동이 벌어지면서 1845년 대성당은 마침내 웅장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번 화재가 종교를 넘어서 예술적 상징의 소멸로 인식된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문학과 예술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화재 다음 날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은 성당 앞으로 달려가 포레의 ‘꿈꾸고 난 뒤’를 연주하며 예술적 가치의 상실을 애도했다. 화재 당시 세계 음악계는 대성당 내 대형 파이프 오르간의 피해를 우려했다. 중세에 제작된 이 오르간은 파이프만 7800여개에 이르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위용과 전통을 자랑한다.

파리 시민들은 화재 발생 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오르간을 포함한 유물 구출작전에 돌입했다. 소방대원과 경찰들이 유물들을 수습해서 밖으로 옮기는 동안 성당 신부 및 관리자들은 인간 띠를 만들어 불길에 가장 인접해 있던 파이프 오르간과 성당의 가장 중요한 유물인 가시면류관을 위험을 불사하며 사수했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파이프 오르간은 아무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갓 건물과 악기에 생명을 건 행동을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대성당 재건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자 “사람보다 성당이 우선이냐”면서 ‘노란 조끼’ 시위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화마로부터 성당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지는 자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그 안에 내재된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 것이었을 것이다.

대성당은 재건되겠지만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파이프 오르간만큼은 미래에도 옛 소리를 울리며 남아있는 자들을 위로해 줄 것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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