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방법은 전쟁준비다. 평화를 원한다면 조약보다는 최고의 전함들로 구성된 최강의 함대에 의존하는 게 낫다.” 1897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미국 해군성 차관보에 임명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해군 전쟁대학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그는 ‘미국의 시대’를 위한 강력한 군사력과 공세적 대외정책을 주장했다. 그의 의견대로 미 해군의 전함수는 1890년 ‘제로’에서 1905년 스물다섯척으로 늘어 세계 주요 해상 세력이 됐다. 루스벨트는 1898년 쿠바 아바나에서 미군 전함이 폭침을 당하자 직접 참전해 스페인을 굴복시키고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얻었다.
1902년 대통령 재직 시에는 베네수엘라를 함선으로 봉쇄한 독일을 철수시키고, 이후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의 독립을 돕고 파나마 운하 건설권도 얻어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온두라스, 쿠바, 멕시코 등 미국의 이해가 걸린 곳에 수시로 개입했다. 루스벨트는 ‘부드럽게 말하되 큰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는 이른바 ‘큰 몽둥이’ 정책으로 주변국들을 관리했다. 미국은 루스벨트를 시작으로 100년 이상 세계 최강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에서 미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고 기존 강대국을 넘어 세계 패권을 거머쥔 사례로 꼽았다.
100여년이 지난 현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루스벨트식 세계 패권 야심이 엿보인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몽(中國夢)을 선포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내세웠다. 그즈음 중국은 ‘해양 강국’ 기치로 남중국해 곳곳의 암초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화했다. 특히 시 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최강 군대’ 건설을 선언하며 미국에 사실상 도전장을 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유럽까지 확대하고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 태평양 도서국, 북극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까지는 루스벨트가 걸었던 길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이 무역전쟁을 시작하자 결과는 심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자 수출·제조업체와 IT 기업들이 밀집한 광둥성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미국의 부품공급 중단 조치에 반도체업체 푸젠진화와 통신장비업체 ZTE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중국은 경제성장률 저하와 소비·투자·수출 동반 부진에 실업률 상승 등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보다 호전된 3.2%를 기록했고, 4월 실업률은 3.6%로 반세기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아직 미국과 맞짱을 뜰 수준은 안 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초기에 ‘결연한 항전’이나 ‘전쟁 불사’를 외치던 중국은 지금 미국에 극도로 저자세다. 시 주석은 지난달 26일 일대일로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외자지분 소유와 독자경영 확대, 수입 확대 등을 약속하면서 ‘무역흑자를 추구하지 않겠다’ ‘환율절하를 하지 않겠다’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을 없애겠다’고도 했다. 서방 언론은 “항복문서를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와중에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데도 중국은 묵묵히 듣고만 있다.
특히 시 주석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것도 중국의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 최근 대학교수들 사이에서 ‘시진핑 비판’ 바람이 부는 것도 한 예다. 시진핑 개인숭배 풍조를 비판한 칭화대 쉬장룬 교수는 정직 처분을 받았다. 궈위화 칭화대 교수는 시 주석의 맹목적 애국주의를 비판했다. 또 부패와의 전쟁과 관료사회에 대한 감시·통제 강화로 상부 눈치만 보는 보신주의 만연도 중국의 약점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무역전쟁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서두르고, 사상이나 사회통제 수위를 낮춰 창의력을 높인다면 미국을 넘어서는 패권국이 될 시기가 빨라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은 당분간 그렇게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