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카페가 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노트북을 들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작업을 하려고 찾아갔다간 낭패를 보게 되는 곳이다.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고 콘센트가 없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가기 위해 출근길에 잠시 들렀다간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 한 잔의 커피가 나오기까지 10분 안팎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출근길 모닝커피를 살 만한 곳은 아니다.
이런 카페도 있다. 매장은 널찍한데 카페 곳곳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 노트북을 펼쳐놓고 문서 작업을 하는 이들 때문에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다. 진동벨이 없어서 커피를 주문한 손님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지금 주문한 커피가 언제 로스팅 된 것인지를 물어도 곤란한 미소를 곁들인 직원에게서 ‘말씀드릴 수 없다’는 답밖에 들을 수 없다.
도무지 편의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 소비자의 요구사항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 서비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내어준다’는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는 곳들이다.
하지만 이 두 카페는 ‘세계 3대 카페 시장’인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핫한 곳이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노 와이파이, 노 콘센트’를 콘셉트로 삼은 ‘블루보틀’, 그리고 집과 사무실을 넘어 ‘제3의 공간’을 추구하는 ‘스타벅스’. 이 두 곳은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한국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다.
블루보틀은 ‘커피의 본질은 맛’이라는 점을 중시한다. 블렌딩한 원두로 대중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고급 원두를 쓴 싱글 오리진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추출해 판매한다.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리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것보다 커피 한 잔이 완성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커피의 맛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집중하는 걸 추구해 와이파이나 콘센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성공이 ‘와이파이’와 ‘콘센트’로 요약된다면 블루보틀은 반대 지점에 있는 셈이다.
블루보틀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 3일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이 문을 열었는데, 새벽부터 8시간가량 줄을 서서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연일 화제가 됐다. 블루보틀 로고(파란색 병) 아래서 찍은 인증샷이 소셜미디어에 경쟁적으로 담겼다. 4~5시간 이상 기다려 커피를 마시고, 블루보틀 머그잔 등을 산 경험담은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졌다. 인스타그램에 ‘#블루보틀’을 단 게시물은 10일 기준 16만개 이상 올라와 있다. 블루보틀 방문의 목적은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커피의 본질’을 위해서라기보다 ‘인증샷’ 때문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에 128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연 매출은 1조5224억원에 이르렀다. 스타벅스가 매년 여름과 겨울에 사은품 증정을 내걸고 진행하는 ‘e-프리퀀시 이벤트’는 때로 논란거리를 만들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스타벅스의 멤버십 격인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 회원 수는 지난달 500만명을 돌파했다. 스타벅스가 연말이면 내놓는 다이어리는 종종 품절사태를 맞는다.
국내 커피업계에서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곳이지만 스타벅스는 언제나 ‘맛’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인 ‘신선한 로스팅’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모든 원두가 미국 스타벅스 본사에서 제공되는데, 로스팅한 시점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오기 때문에 신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과 ‘국내에서 유독 빠르게 소비되고 다시 입고되기 때문에 신선도에 문제가 없다’는 반박이 오간다. 국내 커피 업계의 다른 브랜드들은 보통 로스팅 시점을 공개하면서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타벅스 원두의 신선도 논쟁은 업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소비자들과 스타벅스를 거부하는 소비자들 간에서도 계속된다.
이렇게 ‘안 되는 것 많고,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두 곳인데 한국인들은 왜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에 열광할까. 물론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의 인기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스타벅스는 전세계 2만8000여개 매장을 두고 있고,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커피(‘국제스페셜티커피협회’(SCA)로부터 원두의 질에 대해 100점 만점에서 80점 이상을 받은 원두로 만든 커피)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곳이긴 하지만 한국 상황 또한 매우 특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요즘 브랜드’의 저자 박찬용씨는 책에서 “전 세계에서 유행 주기가 가장 빠른 나라가 한국”이라며 “(특히) 서울의 유행이 나라 전체의 유행을 대변한다”고 적었다.
트렌드는 ‘인증샷’으로 증명된다.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에 열광하는 소비행태는 트렌드의 최전선이자 격전장인 한국에서 ‘인증샷’ 문화를 만나 덩치를 키웠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블루보틀 매장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한국에 매장을 내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격보다 만족도를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가심비’ 성향도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의 인기를 설명해준다. 누군가는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의 맛에, 누군가는 블루보틀의 세련된 이미지에, 누군가는 ‘#블루보틀’ 트렌드에 합류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이고 비용을 지불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10대 카페 시장 중 상위 3곳은 미국(263억 달러), 중국(58억 달러), 한국(48억 달러)이었다. 한 커피업계 관계자는 “세계 3대 시장인 우리나라에서 미국 브랜드들이 인기를 선도한다는 게 다소 씁쓸하다”면서도 “그만큼 최고의 브랜드, 최상의 커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