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예방접종 경각심 부족… 백일해 백신 유효기간 짧아
홍역 재유행, 국외 유입 주원인… 부정확한 정보 확산 백신 기피 전세계적 홍역 발생 증가 원인
소아마비는 해외에서 지속 발생
백일해와 홍역, 소아마비(폴리오) 등 1950~80년대 예방백신 도입 이후 발생률이 지속적으로 줄거나 퇴치 수준까지 갔던 ‘추억의 감염병’이 국내외에서 재유행하며 고개를 들고 있다.
‘걸리면 백일 동안 기침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백일해는 ‘보르데텔라백일해균’에 의해 옮는 급성 호흡기병이다. 2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온 비말(물방울)로 전파된다. 토하거나 잠을 못 이룰 정도의 심한 기침을 2주 이상 하는 것이 특징으로 감기 증상과 감별이 쉽지 않다. 치명률은 0.2% 정도로 높지 않지만 1세 미만 영아가 감염될 경우 호흡곤란과 경련, 무호흡 등으로 이어져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정부는 백일해를 만 12세 이하 아동 국가필수예방접종(NIP) 항목에 포함시켜 관리해 왔다. 예방백신 개발과 NIP사업으로 10여년 전 사실상 사라져 의료계에서 ‘청정’을 선언했던 백일해가 근래 몇 년 새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질병관리본부 감염병포털에 따르면 2008년 9건에 불과하던 백일해가 지난해 980건(잠정치) 발생해 109배 급증했다. 200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2008년까지 백일해 발생 수는 5~21건을 유지하다 2009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10년간 100건을 넘긴 해만 5개년(2012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도 167건(5월 19일 기준)이 발생했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강진한 교수는 “작년에 백일해 발생이 1000건에 육박한 것은 연초에 확산세가 컸기 때문”이라며 “올해 상반기는 그 정도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해는 여름과 가을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백일해는 선진국에서도 2~5년 주기로 ‘지역적 돌발 유행’이 줄곧 있어 왔다. 우리나라도 2012년 전남 영암의 고교, 2015년 산후조리원에서 집단 발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백일해 급증의 원인으로 진단 기법의 발전, 성인들의 예방접종 경각심 부족, 백신 유효기간이 10년 이내라는 점 등을 꼽는다. 백일해의 주 감염층은 영유아들이지만 호발 연령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감염자의 54.7%가 9세 이하였다. 성인 가운데는 면역력 약한 70세 이상의 감염률(10.8%)이 높은 편이다. 백일해는 가족 간 전염성이 강해 가족 내 2차 발병률이 80%에 달한다. 집안 내 어른이 걸려 아이들에게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백일해는 개인위생을 지키는 것 외에 백신 접종이 근본 예방법이다.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를 함께 막아주는 영유아용 예방백신(DTap)이 나와 있으며 국내에선 생후 2, 4, 6개월 3차례에 걸쳐 국가필수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영유아 접종률은 90~96%에 이를 정도로 높다. 하지만 20대 성인용 백신(Tdap) 접종률(최소치)은 30.5%, 30대 7%, 40대 3.1%, 50대 2.7%로 나이들수록 뚝 떨어진다. 예방접종으로 획득한 면역은 시간이 지나며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질본 관계자는 “백일해 예방접종으로 인한 면역유지는 7~8년으로, 한 번 맞으면 평생 면역이 유지되는 홍역과 달리 장기간 방어면역을 유지하기 위해선 성인들도 10년에 한 번씩 Tdap 추가 접종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만 10세이상 청소년 및 성인 접종이 가능한 Tdap 백신은 부스트릭스(GSK) 등 2개 제품이 국내에 허가돼 있다.
2006년과 2014년 두 차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퇴치 인증’을 받았던 홍역 또한 올해 들어 국내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대구와 안산 대전 등 8개 지역에서 지난 16일까지 154건(집단 95건, 개별 59건)이 발생했다. 최근 5년간 연간 발생 건수(7~17건)를 최대 22배나 넘겼다.
국내 홍역의 재유행은 해외여행, 외국인 입국 등을 통한 ‘국외 유입’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질병관리본부 김유미 예방접종관리과장은 “가장 최근까지 환자가 발생했던 대전 소아전문병원에서도 지난달 21일 이후 환자가 나오지 않고 있어 잠복기(3주)의 배(6주간)가 되는 다음 달 초까지 추가 환자가 없으면 공식 유행 종료가 선언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홍역 유행은 해외 유입 바이러스가 국내에 토착화한 건 아니어서 WHO의 ‘퇴치 인증’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외 유입으로 인한 산발적 홍역 발생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언제든 토착화할 수 있어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는 게 보건당국의 입장이다. 김 과장은 “7~8월 휴가 시즌을 앞두고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항체 면역 유지를 위해 지금쯤 홍역 1차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홍역을 막아주는 MMR 백신 국가필수접종은 생후 12개월(1차)과 만 4~6세(2차)에 이뤄진다. 성인은 시기 상관없이 2차례(한 번 맞고 4주 뒤 추가 접종) 맞으면 된다. 특히 항체 보유율이 낮은 20, 30대의 경우 면역의 증거(홍역을 앓은 적 있거나 예방접종 2회 기록, 홍역 항체 검사 양성)가 없다면 여행 출국 전 최소 1회 접종이 권고된다.
홍역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동남아(베트남, 필리핀 등) 등지에서 유행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국제 발병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 수준으로 급격히 늘었다. 전문가들은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으로 인한 백신 기피 현상이 전 세계적 홍역 발생 증가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폴리오바이러스가 척수신경을 침범해 어린이에게 하지 마비를 일으키는 소아마비 또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을 중심으로 지속 발생하고 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사람 간에만 전파하며 분변이나 입, 호흡기를 통해 옮겨진다. 1960년대 소아마비 백신 개발로 발생률이 감소해 WHO는 94년 서유럽에서, 2000년엔 한국을 포함해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백신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면서 일부 지역에서 접종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1983년 5명 발생 이후 35년째 발생 보고가 없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하지만 해외 유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어린이 마비 환자 등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