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기는 직장인 김윤정(39)씨는 지난 2015년 제주도에서 우연히 ‘모카다방’을 방문한 뒤부터 매년 진행되는 ‘모카○○’ 팝업스토어를 일부러 찾아다니고 있다. 이듬해 서울 성동구에 생긴 ‘모카책방’, 부산 해운대구에 문을 열었던 ‘모카사진관’(2017년),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만들어진 ‘모카우체국’까지 매년 순회했다. 김씨는 “아날로그 감성이 잘 맞고, 금방 사라질 공간을 추억으로 담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아 일부러 찾게 된다”며 “모카 시리즈가 여행 갈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김씨를 전주로, 부산으로 움직이게 만든 건 동서식품이 2015년부터 매년 진행하는 ‘모카○○’ 팝업스토어다.
동서식품은 ‘맥심 모카골드’ 브랜드를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년 2개월 동안만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를 연다. 다방, 책방, 사진관, 우체국에 이어 올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모카라디오’를 진행한다. 라디오 방송국처럼 꾸며진 곳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모카골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동서식품의 ‘모카○○’ 시리즈는 매년 방문객 수를 크게 늘리며 성공적인 경험마케팅 사례로 꼽힌다(지난해 모카우체국에는 20만명이 다녀갔다). 이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무료로 모카골드 한 잔을 제공하고 모카골드가 추구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공유하지만 어디에서도 ‘이제 모카골드를 살 시간’이라는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모카골드를 판매하지 않는 대신 모카골드를 경험하는 선에서 끝을 내는 것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치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경험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다.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게 경험마케팅의 기조다. 동서식품과 제일기획이 함께 만든 책 ‘모카골드 경험마케팅’에 적힌 이 문구는 경험마케팅이 추구하는 효과를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좋은 경험이 좋은 기억이 되어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니스프리도 경험에 초점을 맞춘 공간 ‘이니스프리 그린라운지’를 2016년 7월 처음 만들었다. 이니스프리 제품 600여종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제품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사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준다. 다양한 이니스프리 제품을 써보면서 이니스프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충성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니스프리 그린라운지’는 중앙대 홍익대 국민대 등 대학가와 여의도역, 대전터미널,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해 이니스프리를 꾸준히 알려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웨딩북 청담’도 소비자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웨딩북 청담은 웨딩드레스를 편하게 입어볼 수 있고, VR(가상현실) 시스템을 구축해 실제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듯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지난 23일 ‘웨딩북 청담’에서 만난 성모(32)씨는 “호객행위 없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고, 결혼 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결혼 준비를 하다보면 의외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데 다양한 것을 직접 해보고, 입어보고, 한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특히 좋다”고 말했다. 이곳의 강점도 ‘호객행위가 없다’는 것과 ‘결혼 준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구매를 강요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가치 소비 성향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이나 성능,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만으로는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발맞추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갖고 다가가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면서 기업, 브랜드, 제품의 가치와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환경에서 경험마케팅은 주효한 방식으로 꼽히고 있다.
아디다스의 ‘런베이스 서울’도 제품 구매와 직접 관련 없는 ‘경험의 공간’이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있는 ‘런베이스 서울’은 마음껏 달리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제공한다. 서울숲 주변을 달리고 난 뒤 샤워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득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 아무 준비 없이 ‘런베이스 서울’에 가도 4000원만 내면 라커, 샤워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러닝화나 러닝복을 준비하지 않아도 빌려 입을 수 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아디다스 제품을 경험할 수 있고, 아디다스가 추구하는 ‘달리기의 기쁨’도 누릴 수 있다는 게 ‘런베이스 서울’의 매력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에 문을 연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는 샘표식품이 한국의 음식문화와 샘표의 ‘연두’를 알리는 곳이다. 콩과 발효식품, 채식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서 뉴욕의 외국인들에게 한국 식문화를 알리고 있다. “연두를 사세요”라고 하는 대신 연두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경험케 한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브랜드’ 하나면 승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상의 ‘스토리’를 요구한다”며 “브랜드나 제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가 재밌어야 하며, 기업이 제시하는 방향성이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케팅하기에 점점 까다로운 소비 환경에서 경험마케팅은 해볼 만한 방식인 셈이다.
경험마케팅은 기업 입장에서 ‘쉬운 선택’은 아니다. 호객행위를 최대한 배제하다보니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험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담아내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점에서 꾸준히 시도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