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계에는 지금 생활 예술 열풍이 한창이다. 국공립 기관과 단체들이 일반 대중이 창작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 중이다. 덕분에 예술인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그들과 직접 소통하고 교감을 추구하는 모습을 이제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예술의 공공성’을 표방하는 생활예술은 대부분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술가들이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예술 표현의 방법을 새롭게 배우길 원하는 대중들에게는 분명 즐거운 경험이지만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교육에 매몰돼 창작이라는 본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최근 한국에 상륙한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자장가 프로젝트는 대중과 예술가의 만남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기술 습득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지는 드문 사례이다. 2011년 클래식 전문 공연장 카네기홀은 지역 청소년 미혼모 시설과 협력해 임신 중이거나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를 작곡가와 매칭시켜 그들만의 자장가를 작사하고 작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중의 열렬한 호응 속에 카네기홀은 점차 대상을 늘렸다. 특히 라이컬즈 아일랜드 교도소의 여성 수감자와 함께 만든 자장가는 그 파급력이 대단했다. 교도소에 격리돼 자신이 낳은 아기를 직접 돌볼 수 없는 재소자들은 아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로 가사를 만들었고 작곡가들은 여기에 곡을 붙여 녹음을 했다. 자신의 언어로 완성된 자장가를 통해 여성 재소자는 수감 생활로 희박해져 가던 감성을 일깨웠고, 작곡가들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수감자들의 인생의 굴곡을 직접 들으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사회참여적음악가(SEM)네트워크가 카네기홀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협력해서 진행한 프로젝트 ‘엄마의 작은 노래’도 이와 유사한 효과를 냈다. 카네기홀 프로젝트를 한국형으로 변형한 이 프로젝트는 출산을 앞두거나 0~3세 아이를 둔 부모 9명(다문화 가정, 일반 가정, 미혼모, 주부 아빠 등)과 8명의 젊은 작곡가 및 싱어송라이터들을 매칭시켜 그들만의 자장가를 작곡해서 최근 발표했다.
한 달 여간 진행된 엄마와 작곡가의 공동 창작의 결실은 지난 21일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국제심포지엄의 사전 행사로 소개됐다. 새내기 엄마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들만의 내러티브로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참여한 음악가들의 입장에서도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 타인의 리듬에 부응하며 창조적 자극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런 사례는 예술의 공공성과 창작의 활성화가 훌륭한 균형을 이룬 케이스다. 예술을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 바라보는 안목을 전제로 한다면, 공공 예술정책은 새로운 창작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 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