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금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니라 ‘넓은 도량’



“나이 들면 정신이 퇴락하게 돼 있어서….” “정치에는 금도가 있고….” “정치 금도를 지키겠습니다.” “….”

얼마 전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퇴락(頹落)은 지위나 수준이 뒤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또 ‘집이라는 게 사람이 살지 않고 돌보지 않으면 퇴락하게 마련이다’처럼 건물 따위가 쇠퇴해 허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나이 먹은 것도 섭섭한데 정신이 퇴락했다니 모욕을 느낀 당사자가 ‘금도’를 거론하며 발끈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뜻으로 ‘금도’를 말했을까요. 아마 말하는 거야 자유지만 가려서 해야 하고, 말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강조하고 싶은 거였겠지요.

금도는 유독 정치인들이 자주 입에 담는데, 어감상 ‘禁度’일 것으로 짐작하고 ‘도의상 지켜야 할 선’의 의미로 쓰는 것 같으나 금도에 그런 뜻은 없습니다. 金桃(복숭아의 한 종류), 金途(돈을 변통해 쓸 수 있는 연줄), 禁盜(도둑질을 금함)가 사전에 올라 있는데 듣기 힘든 말이고, 종종 쓰이는 ‘襟度’는 ‘남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입니다. “병졸들은 하나같이 이순신의 襟度에 감복해마지 않았다.” 충무공의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품성에 모두 마음으로 따랐다는 의미이지요. 襟은 옷깃을 이르는 글자로 앞가슴 옷깃인 흉금(胸襟, 흉금을 터놓고 말하다)에 들었고, 度는 너그럽게 남을 용납하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을 이르는 도량(度量)의 의미도 가진 글자입니다.

지도자라면 처신을 신중하고 바르게 해야 합니다. 행동뿐 아니라 말도 잘못하면 많은 사람을 오도(誤導)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서완식 어문팀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