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살살 녹는 ‘작은 사치’ SNS 바람타고 훨훨

콘래드 서울 ‘37 빙수’는 투명한 돔 모양 뚜껑을 열면 드라이아이스가 흘러나와 구름 위에 빙수가 떠 있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플레이팅으로 인기가 높다. 콘래드 서울 제공




결혼 4년차인 백모(35)씨 부부는 여름이면 고급 호텔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야근에 지친 3년 전 어느 날 ‘미친 척하고’ 두 사람 한 끼 식사보다 비싼 호텔 빙수 먹은 게 처음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예쁘게 담긴 빙수를 나눠 먹은 그날의 ‘위로’를 잊지 못해서, 두 사람은 여름이면 과감하게 호텔 빙수에 투자한다. 백씨는 “평소 사치라고 할 만한 건 거의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힘들게 돈 벌어서 1년에 한두 번 고급 디저트를 먹는 정도의 ‘가벼운 사치’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은 ‘호텔 빙수’의 계절이 됐다. 보통 3만원대부터 시작해 6만원에 육박하는 이 값비싼 디저트는 없어서 못 파는 정도다. 올해는 5월부터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빙수 판매도 크게 늘었다.

9일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따르면 지난달 빙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2013년부터 다른 호텔들보다 조금 이른 5월부터 빙수 판매를 시작하는데 올해 판매량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빙수를 본격적으로 판매해 ‘호텔 빙수’의 원조로 꼽히는 서울신라호텔도 빙수 개시 첫 열흘 간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상승했다.

호텔 빙수는 밥값보다 비싸다. 보통 2인분이 3만원대 중반에서 5만원대 후반이고, 1인분은 1만원대 후반에서 3만원대 중반에 이른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호텔 빙수를 찾는 이유는 두 가지가 꼽힌다.

백씨처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호텔 빙수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다. 가치 소비 성향이 강해지면서 하루 저녁의 가벼운 사치가 높은 만족도를 준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다. 애플망고, 코코넛, 멜론처럼 고급 재료를 써서 만든 호텔 빙수는 시각적으로도 높은 만족도를 준다. 솜사탕과 설탕으로 구름이 떠 있는 모양을 구현해내기도 하고(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클라우드 망고 빙수’), 명품 브랜드와 협업해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만들기도 하고(롯데호텔서울 ‘모스키노 트레이 디저트 세트’), 드라이아이스로 빙수가 구름에 떠 있는 묘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콘래드 서울 ‘37빙수’). 사진으로 남기고 싶고, 자신의 SNS로 공유하고 싶은 아이템인 셈이다.

호텔들이 이렇게 이채로운 빙수 메뉴를 내놓는 것은 왜일까. 일단 빙수 판매로 수입을 올리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호텔 빙수가 값비싼 디저트이긴 하지만 이른바 ‘남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니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메뉴 개발부터 재료 선정과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가격을 매겨나가다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서울신라호텔이 ‘애플망고 빙수’의 가격을 ‘시가’로 책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망고 빙수에는 제주산 애플망고 1개반~2개(410g)와 국내산 팥, 수제 아이스크림 등이 들어간다. 재료비가 빙수 가격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원가가 판매가를 넘어서기도 한다.

서울신라호텔 관계자는 “최근 4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다보니 판매가가 원가보다 낮아져서 판매 중단까지 고민했었다”며 “고객의 신뢰와 서비스 차원에서 ‘망고가격 연동제’를 도입해 제주산 애플망고 시세에 따라 빙수 판매가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빙수를 판매하는 다른 호텔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호텔들이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든데도 매년 여름마다 양질의 재료를 찾아 색다른 디자인의 빙수를 내놓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호텔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소비자들이 호텔을 경험하고 호텔을 ‘친숙한 곳’으로 만들려는 전략때문이다.

명품을 처음 구매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품목은 가격 부담이 크지 않은 액세서리나 소품이다. 호텔업계는 호텔 빙수가 명품의 액세서리처럼 기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급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몇 만원짜리 디저트는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호텔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면 다시 호텔을 찾을 수 있다. 백씨가 매년 빙수를 먹기 위해 호텔을 찾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호텔의 F&B(Food and Beverage) 메뉴는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주효한 마케팅 방식으로 꼽힌다. 빙수나 뷔페로 시작해 파인 다이닝, 숙박으로 소비자들의 호텔 경험이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상황을 기대한 전략인 셈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부모님과 함께 좋은 기억을 쌓은 장소는 어른이 돼서도 다시 찾게 된다. 자녀가 생기면 아이와 함께 방문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그 경험을 나누면서 또 다시 특별해진다”며 “호텔은 ‘대를 이어 찾는 곳’이 될 수 있으므로, 20~30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서비스를 자꾸 찾아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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