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나비부인의 뜻밖 흥행…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절반의 성공’


 
올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노블아트오페라단의 ‘나비부인’. 상징적인 미장센으로 처리된 무대는 세련미를 추구해 호평받았고 입소문이 나면서 매진 사례를 이뤘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해방 이후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토양은 민간 주도로 일궈졌다. 정부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시점에 음악가들이 앞장서서 다양한 음악 재건 운동을 펼쳤다. 이는 오페라계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린 것도 음악인과 민간 애호가들이었다.

특히 47년 ‘국제오페라사’를 창단한 테너 이인선은 한국 오페라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본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출신의 의사였던 그는 오페라에 대한 개인적 열망 때문에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가서 성악을 공부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 수익금을 오페라단에 탈탈 쏟아부었다.

62년 창단된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90년대 후반까지 전국의 민간 오페라단 80여개가 활동했고, 한국 오페라의 부흥에 공헌했다. 하지만 97년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50여개의 민간 오페라단이 문을 닫았고 이는 한국 오페라계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한 번 무너진 토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해외 유명 오페라 무대에서 한국 성악가들의 낭보가 빈번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무대는 더 열악해져 갔다.

2010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이 축제는 민간 예술단체의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국가 예술정책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또한 한국 오페라의 토대가 됐던 민간 오페라단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민간 오페라단의 체질이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소개된 프로덕션은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 매번 수준 미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간단체들끼리 지원금을 나눠먹는 행사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데 1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맞이한 올해 축제에서는 반전이 일어났다. 노블아트오페라단의 ‘나비부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상징적인 미장센으로 처리된 무대는 근래 보기 드물게 세련미를 추구했고, 주역을 맡은 젊은 성악가들의 연기력과 가창력이 돋보였다. 축제의 특성상 오페라 입문 관객이 절대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성악가들이 이끄는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했다. 첫 공연부터 입소문이 퍼진 이 프로덕션은 대부분의 객석이 초대권 소지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로 매진 사례를 이뤘다.

같은 기간 소극장에서 상연된 선이오페라앙상블의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 또한 작은 공간을 활용한 기발한 무대 연출과 성악가들의 앙상블이 훌륭한 수작이었다. 물론 올해 모든 프로덕션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2편의 창작 오페라 ‘달아, 비취시오라’와 ‘배비장전’은 완성도가 심각하게 떨어졌고,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에서 섭외해온 주역 테너의 기량 미달이 치명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오페라의 뿌리인 민간 오페라의 소생이라는 점에서, 그 부활의 주역이 젊은 세대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축제를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하고 싶다. 고목의 그루터기에 튼 새싹과 같다고나 할까.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 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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