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신화와 데자뷔, 너무도 흡사한 기적의 길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9일(한국시간) 폴란드 비엘스코 비아와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극적으로 세네갈을 꺾고 4강에 오른 뒤 팬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19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36년 만에 4강 진출 신화를 재현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83년 멕시코 대회 당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박종환 감독. 뉴시스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9일(한국시간) 세네갈을 꺾고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은 36년 전인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 때의 데자뷔를 연상케 한다. 준결승에 오르는 과정과 활약한 선수, 상대 팀, 훈련방식 등 많은 것들이 절묘하게 비슷하다.

1패 뒤 2승, 4강 전 상대 팀은 남미

대표팀은 1차전 포르투갈에 1대 0으로 패했지만 남아공화국과 강호 아르헨티나를 각각 1대 0과 2대 1, 한 점차로 따돌리고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현 U-20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조별예선 스코틀랜드와의 첫 경기를 0대 2로 내줬지만 개최국 멕시코와 호주를 똑같이 2대 1, 한 점차로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당시에는 조별리그를 거치면 곧바로 8강에 오르는 시스템이었다.

8강전도 비슷하다. 대표팀은 세네갈과 연장 접전 끝에 물리치고 4강 신화를 재현했다. 36년 전에도 한국은 우승후보 우루과이를 연장에서 2대 1로 제압하고 사상 첫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준결승전에서 만나는 팀도 비슷하다. 36년 전 한국은 브라질을 만났다. 이번에는 같은 남미 팀인 에콰도르와 결승행을 놓고 다툰다.

이강인·오세훈과 신연호·김종부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것도 똑같다. 오세훈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3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한 골, 일본과의 16강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며 팀을 8강에 진출시켰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선 이강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1골 2도움으로 4강 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36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리그와 8강에선 김종부가 펄펄 날았다. 김종부는 조별리그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신연호는 강호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팀이 넣은 두 골을 모두 넣었다. 김종부는 그 경기에서 어시스트 하나를 추가했다.

당시 한국은 우여곡절 끝에 본선에 진출해 4강 신화를 이뤄 더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원래 한국은 아시아 예선 3위에 그쳐 본선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집단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켰고, FIFA가 북한의 국제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내려 어부지리로 출전권을 따냈다. 그런데 한국의 FIFA 주최 대회 사상 첫 4강 진입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이었다.

체력·조직력에 방점 둔 훈련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정정용 감독은 체력과 조직력 훈련에 중점을 뒀다. 특히 정 감독은 “큰 대회일수록 선수들이 한계를 넘어설 경기 체력을 갖춰야 한다. 상대보다 1.5배에서 2배는 많이 뛰게 하겠다”며 체력 향상에 주안점을 뒀다. 이강인도 정정용 감독의 훈련 강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36년 전 박종환 전 감독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었다. 또 경기가 펼쳐지는 멕시코 고지대의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훈련을 시킨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박 전 감독은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축구는 단체 경기이지 않나. 오로지 팀워크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솔직히 선수 개개인의 기술 향상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팀의 조직력과 전술을 다지는 훈련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종환 전 감독 “우승 역사 써 주길”

83년 4강을 이끈 박 전 감독은 후배들의 이번 대회 경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승부차기 끝에 세네갈을 꺾고 극적으로 4강행을 확정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U-20 대표팀 선수들은 기술이나 체력적인 부분을 모두 갖춘 것 같다. 멕시코 대회 때보다도 더 패기가 넘치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특히 상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하고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감독은 ‘정정용호’가 4강을 넘어 결승 진출, 우승의 역사를 써 주기를 당부했다. 그는 “자신감을 더 가지되 지도자와 선수가 모두 하나라는 생각으로 조직력을 더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우승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각자가 팀을 위한 희생정신을 가지고 힘을 합쳐 남은 경기를 잘 풀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모규엽 박구인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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